地球的 교류와 전망의 틀 제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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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과연 어떠한 책들이 한국인의 교양을 풍요롭게 하며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것일까. 중앙일보 북섹션 '행복한 책읽기'팀은 올해 1월13일부터 12월 15일까지 프런트면과 기획리뷰면을 통해 그 주의 일품요리로 가장 비중있게 다뤘던 책의 목록을 보여드립니다.

매주 새로 출간되는 수십 권의 책 더미 속에서 함께 읽고 생각해보길 바라며 골랐던 책입니다. 그만큼 올 한해 우리 독서시장에서 화제가 됐던 책들과 출판의 큰 흐름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데 부족함이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책 선정 기준은 시의성.교양.완성도.대중성 등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지식 수입국가에서 지식 수출국으로의 비약 가능성'.

조동일 교수의 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과 정수일씨가 펴낸 두권 『씰크로드학』 『고대문명 교류사』를 올해의 인문서로 선정한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저술의 함량은 물론이고, 근대 이래로 일방적인 문화 수신국가였던 구조를 역전시킬 만한 저작물이라는 판단에서다.

두 종의 책은 문학사와 동서교류사라는 별도 영역을 다루고 있지만, 구조면에서는 닮은꼴이다. 즉 근대 전후 문학의 흐름과 교류사를 거시적으로 조망하고 있고, 이를 통해 일반이론(grand theory) 의 수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학문적 구상 자체가 크지만, 그건 시대적 요청에 대한 문명사적 화답이기도 하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했던 서구 편향의 오리엔탈리즘을 극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이라는 얘기다.

조교수는 그동안 따로 놀았던 문학사와 세계 역사의 사회사를 유기적으로 한꺼번에 거머쥐는 방식으로 이 책을 풀어나갔다. 물론 서구 문학에 따라다녔던 프리미엄은 깨끗하게 무시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이것이 '외면'이 아니고 '승부'형태로 책에 담겨 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이론적 선례로 작용해온 헤겔과 루카치 등의 문학이론과 한판승부를 펼치는데, 이 대목은 논리적일 뿐더러 당당하기조차 하다.

신스크리트어 문명권, 아랍어 문명권, 한문문명권, 유럽문명권 등 4개의 문명권역을 오가며, 문학과 소설 장르의 앞날을 전망하는 그의 작업은 결국 유럽문명권 중심의 근대학문과 문학논의의 대안으로 치닫는다.

정수일(무하마드 깐수) 씨의 작업은 그가 복역 중 집필작업을 했다는 점에 대한 관심 등과 달리 순수하게 학문적 성취만으로도 상찬(賞讚) 받을 만하다.

근대 이후 서세동점(西勢東漸) 에 묻어 있는 우월감(서구) 과 패배의식(제3세계) 을 모두 벗어나 환(環) 지구적 문명교류의 통로를 발견하고 이것을 일반이론으로 올려놓으려는 학문적 원력(願力) 은 놀랍다.『씰크로드학』이 새로운 학문의 그릇이자 내용물일 수 있다는 점에서다.

조교수와 정씨의 작업은 호흡이 방대하지만 서술은 일반인들이 읽어내기에 크게 어려움이 없다. 또 하나, 이들 작업이 국내 학계와 큰 연고없이 개인적 형태로 튀어나왔다는 점도 음미해볼 만하다. 그건 두 종의 작업이 국내 학계 전체의 수준이 아니라 예외적 성취라는 확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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