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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고정관념을 헤쳐본다.|몰상식한 「상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모 여성단체의 총회광경. 반소매의 개량식 한복저고리에 검정 몽당치마 떨쳐 입고 단발머리한 50대의 여사 등단. 30관 남짓 되어 보이는 몸집에 어울리는 우렁찬 목소리로 대연설을 토하기 시작했다.
『여성지도자 여러분! 우리 피해자인 연약한 여성은 야비하고도 가증스러운 남성의 이기심을 고발하는 바입니다. 남성이 여성보다 근본적으로 악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려면 교도소에 가보십시오. 남성수감자가 여성수감자보다 백배나 더 많습니다.
이것은 남성이 여성보다 백배나 흉악하다는 산 증거입니다. 몇 명 안되는 여성수감자도 모두 남성 때문에 불가피하게 과오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만약 이 세상에서 남성이 남김없이 사라진다면 모든 범죄가 사라지고 낙원과 같은 세상이 올 것입니다』(우뢰 같은 박수소리와 웃음소리. 자신의 열변에 감동한 연사의 얼굴에 홍조가 번진다).
『그러나 남성을 하루아침에 추방할 수도 없고 싫어도 함께 살 수 밖에 없는게 현실입니다. 우리는 형식적인 구호에 불과한 남녀 동등을 실질적으로 실현시키기 위해서우선 정권을 여성이 잡아야 합니다. 남성이 꼼짝달싹 할 수 없도록 입법조치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과학자를 총동원해서 인공자궁기계를 개발시켜야 합니다. 종래와 같은 석기시대나 다름없는 야만적인 출산방법으로는 여성의 지배체제 확립에 지장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야기가 점점 구체적인 윤곽을 드러내게 되자 장내가 수렁거리기 시작했다.
깡마른 여인이 일어나서 항의한다. 『당신은 남편도 자식도 없는 「미스」니까 그렇게 말하지만, 나는 내 남편이 정계에서 실각하는 것을 원치 않고 내 아들이 며느리의 압제 밑에 숨도 못 쉬게 되는 것을 찬성할 수 없소』. 자리를 박차고 퇴장해 버린다.
자수성가한 여사와 남편 덕에 출세한 사모님들 간에 내분이 생긴 것이다. 이 내분 덕에 남성들은 구사일생으로 구원받았다-.
이 이야기는 한 여성공포증에 걸린 사나이가 날조해낸 황당무개한 「캐리커처」다. 그러나 간단히 일소에 붙이기는 힘들 듯 하다.
때때로 만화가 사진 이상으로 사태의 핵심을 꿰뚫듯이, 이 애기 속에는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이 있다. 우리의 여성운동 여성지위향상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유년기에 있기 때문인지 여성의 발전방향을 남성화 비여성화로 생각하는 경향이 아직도 뿌리 깊은 듯 하다.
남성화 비여성화는 어느 모로 보나 퇴보지 진보일 수 없다. 남성을 미워하면서도 닮아가려고 할 것이 아니라 여성 고유한 특성을 살리는 길은 없을까? <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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