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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날에 있었던 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5일만에 다가오는 장날이었다. 어머님은 장거리를 바구니에 담아 놓으시고 옷을 갈아 입으신다. 장거리라야 하잘 것 없다. 돈과 바꿔서 살림에 필요한 물건을 마련해야 하는 농산물 치고는 어느 것 하나 값나갈 것이 없다.
○…어제부터 밥맛이 없더니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어머님에게 돈 남거든 약 좀 사오라는 말씀을 하고 보니 안된 생각이 든다. 너무나 핍박한 장거리였으니까 말이다. 돈이 없어 못 사겠다는 당연한 말씀을 들으려고 한 얘기 같았다. 그래도 『종이에다 약 이름을 적어다오』하시는 어머님이었다. 늦겠다면서 앞선 사람들과 같이 가려고 빨리 걸어가시는 어머님의 뒷모습이 퍽도 늙어 보였다.
○…물을 긷느라고 오늘도 물두레에 매달렸다. 자연과 싸우다 나는 지쳤는지 모른다. 물을 푸면서도 마음은 장에 간 어머님에게 가있었다. 약은 아무래도 못 사오실 것 같다. 해가 져서 집에 돌아오니 언제 오셨는지 어머님은 부엌에서 밥을 짓고 계셨다. 『힘이 없어 어떻게 물을 펐느냐』고 하신 어머님께 약말을 못하고 방으로 들어가 책상 앞에 앉아서 보니 약이 얹혀 있었다. 마루에 놓인 바구니엔 아무것도 없었다. 코끝이 찡해 왔다. 무엇이 효자고 또 무엇이 불효자인지…. <경남 고성군 삼산면 미릉리 601·남·김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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