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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되던 해 한교의 은인|태국인의 내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22년전 굶주림과 질병에서 허덕이던 한국인 1천6백9명의 목숨을 잇게한 생명의 은인이 이들의 낯익은 얼굴을 보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2차 대전이 끝났을 때 태국에 끌려왔던 한국인 군인·군속(징용) 1천6백9명을 사재를 털어 가며 도와 고국의 땅을 밟게 한 태국의 중국화교 오유성(44)씨.
지난 1일 회사업무관계로 일본에 왔다가 22년 전의 한국인 친구를 찾기 위해 한국 땅을 밟았다는 것-.
1945년 8월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태국에 강제로 징용 당했던 한국인 군인·군속 1천6백9명도 자유의 몸이 되었으나 그리운 고국의 땅을 밝기에는 많은 곤란이 뒤따랐다.
태국의 옛 수도 「아주따이야」시에 들린 한국 군인은 태국 정부에서 주는 주식비에만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한국인 은동표(은동표 6·25 때 학살당했다고 함)씨와 친한 사이였던 오요성 씨는 은씨의 요청과 같은 대일 감정으로 이들을 돕기 시작했다. 당시 22세의 청년으로 미곡상을 경영했던 오요성씨는 사재를 털어 가며 부식비를 대었으며 태국 정부에 한국인 참상을 진정, 구호금을 지급 받았다.
국경을 초월한 오요성 씨의 인간애로 이역 땅에서 해방을 맞은 이들은 10개월 후인 1946년 6월 19일 「유엔」군에서 내어준 편으로 고국의 땅을 밟게 되었다. 조선「호텔」429호실에 머무르고 있는 오씨를 찾아온 사람은 당시 오 씨에게 은혜를 입은 한성대학 문리대 교수 장기근 씨, 경남기업부 사장 전원창 씨, 제일 운수사장 민병원 씨, 삼성해운 전무 길효창 씨 등-.
「방콕」시(석용군로119의11)에서 광석수출을 하고 있는 회사(만곡영다재유한공사)의 경리책임자로 있는 오씨의 이번 한국 방문을 계기로 한국과의 거래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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