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은 멈추지 않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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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컨을 놓고 가족 간에 싸우는 일이 있는가. 하나의 장치가 모든 가전제품을 통제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내년 초 유니버설 일렉트로닉스社는 ‘발할라’로 우리 생활에 신기원을 열 것이다. 이것은 팜톱·웹패드나 ‘마이더스’(리모컨 기능 손목시계)에 리모컨 기능을 부여할 수 있다. 발할라 장치를 집안의 아무 기계에나 향하게 하면 그 화면에 가상 리모컨이 나타난다.

그러나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인터넷에도 연결할 수 있기 때문에 즉석 쇼핑을 가능하게 해준다. 유니버셜 일렉트로닉스社의 롭 릴리니스는 “TV를 보면서 주인공이 어떤 스웨터를 입었는지 알고 싶을 때가 있다. 그 프로그램의 프로듀서가 링크를 제대로 마련해 놓으면 그 스웨터를 가리키고 바로 구입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것은 충동구매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집을 나서도 ‘접속’은 멈추지 않는다. 자동차 업계는 처음에 ‘텔레마틱스’(휴대폰·위성위치추적장치·인터넷을 자동차에 장착)가 금방 퍼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를 이용하면 자동차 계기반에 장착된 단말기로 e메일을 읽고, 주식거래를 할 수 있다. MS나 AOL의 다양한 웹서비스가 운전자의 약속을 상기시켜주고 비행기 예약이 취소됐다고 알려준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이용자가 그리 많지 않다. 컨설턴트 마이클 하이딩스펠더는 “텔레마틱스로 우리의 의사소통 방식이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0년까지 자동차 4천4백만대에 이 장치가 도입될 것으로 예상했다. 한편 기업들은 ‘인터넷 버전 광고판’이라는 아이디어에 침을 흘리고 있다. ‘다음 맥도널드 매장에서는 프렌치 프라이가 공짜’라는 식으로 자동차에 광고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학교와 직장에서 무선기술을 이용할 때 새로운 에티켓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MS의 회의가 바뀐 것을 보라. 여기서는 모든 회사가 ‘와이-파이’로 연결돼 있다. 계획이나 판매자료에 관한 질문이 들어오면 네트워크나 인터넷에서 곧 바로 검색해 대답할 수 있다. 이로써 회의는 더욱 효율적이 된다. 그러나 컴퓨터가 네트워크에 연결돼 있으면 회의 중에 한눈을 팔고 싶은 유혹도 생길 것이다. 예의보다는 생산성을 우선으로 여기는 MS에서는 회의 중에도 그 순간 토론의 당사자가 아니면 e메일을 보내는 것이 허용된다.

무선세계의 진면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POX라는 25달러짜리 장난감일 것이다. 이 무선 게임기는 인터넷에 연결돼 있지는 않지만 근거리에 있는 다른 게임기를 찾는 신호를 보낸다. 다른 게임기를 찾으면 사용자가 직접 프로그램한 ‘전사 캐릭터’끼리 대결을 벌이게 된다.

신호가 오면 어린이들은 대개 게임기를 꺼내 싸움을 시작하지만 그냥 둬도 자동으로 진행된다. 시카고에 거주하는 벤 발론(11)은 집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을 때 POX가 이상한 소리를 냈다. 화면을 봤을 때 발론의 전사 캐릭터는 누가 조종하는지 알 수 없는 ‘로키2’에게 얻어맞아 묵사발이 된 상태였다.

발론의 경험은 무선기술이 얼마나 뛰어난 ‘접속’기능을 제공하는지 일깨워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눈에 보이는 케이블은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는 사실상 네트워크·기계·타인과 연결돼 있다. 그중에는 아는 사람도 있고 타인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스위치를 끌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친구·가족과 항상 연결되고 환경을 계속 업데이트하는 것에 익숙해지면 스위치를 끄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무선세계에 깊숙이 빠져들게 되면 멀리서도 가족이 한데 모여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누구도 어느 한사람에게 깊은 관심을 나타낼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할 수도 있다. 부모는 출장 중 짬을 내 엄지손가락으로 써보낸 문자 메시지 이상의 존재가 되지 못한다. 아이는 새 온라인 게임만 생각하고 있다.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결국은 무선세계가 초래할 불행도 우리의 책임이다.

Steven Levy 기자
자료제공 : 뉴스위크 한국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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