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납금 무서워서 … 서울 택시기사 운행중단 0.2%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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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업계의 운행 중단이 예고된 20일 출근길 불편은 거의 없었다. 정상 운행한 택시들이 서울역 앞에서 승객을 태우고 있다. [김성룡 기자]

20일 오전 8시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출근하는 이지원(31)씨는 내내 불안했다. 이날 오전 5시부터 24시간 동안 택시의 전면 운행 중단이 예고됐기 때문이다. 이씨는 평소 출근길에 용산역에 내려 택시로 갈아타고 회사로 가는 경우가 많다. 그는 용산역 앞에 택시가 한 대도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용산역을 나서자 평소와 다름없이 역 광장에 택시 10여 대가 줄지어 서 있었다. 이씨는 “예상과 달리 역 앞에 택시가 많아서 놀랐다”며 “덕분에 회사에 정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택시노조와 택시회사조합이 전국 택시의 전면 운행 중단을 예고한 20일 출근길 불편은 거의 없었다. 출근시간대 교통량이 많은 서울 퇴계로·을지로 등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택시들로 북적였다. 회사택시 기사 엄모(42)씨는 “사납금 부담이 없는 일부 개인택시만 운행 중단에 동참했고 회사택시 기사들은 회사에 사납금을 내야 해 대부분 정상 운행했다”고 밝혔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의 한 택시회사는 배차실에 ‘20일 정상근무합니다.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라는 공문을 부착했다. 이 회사의 경우 비번을 제외한 택시 70여 대가 모두 정상 운행됐다. 회사 관계자는 “19일 국토해양부에서 운행 중단에 참여할 경우 유가보조금을 석 달간 주지 않겠다는 공문이 내려왔다”며 “회사의 손실을 막기 위해 노조와 상의해 정상 운행을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파업 참여를 독려하려 했던 다른 회사들도 밤 사이에 이같이 입장이 바뀌었다.

 실제 전국 택시의 운행 중단 참여율은 저조했다. 국토부가 집계한 8개 시·도의 택시 운행 중단율은 이날 오전 6시 기준 20.7%에 그쳤다. 수도권과 중부권 택시 총 15만3246대 중 3만1730대만 중단에 참여했다. 대전시와 세종시는 한 대도 참여하지 않았다. 지난 1일 부분 운행 중단을 실시한 영·호남권 택시들은 아예 빠졌다. 서울에선 출근길에 고작 200대(참여율 0.2%)가 운행을 멈췄다. 오후 1시 1만6682대(참여율 23.1%)로 늘었지만 오후 2시 여의도에서 열린 4개 택시단체의 비상총회 직후 대부분 운행을 재개했다.

 택시회사들의 운행 중단율이 저조한 건 영업 손실을 우려해서다. 서울 강서구 신월동의 한 택시회사 관계자는 “회사택시 100여 대가 하루 쉬면 회사로서는 3000만~4000만원 정도의 손실이 발생한다”며 "며칠만 영업을 안 해도 회사 운영에 치명적”이라고 밝혔다. 택시 기사들 입장에선 매일 10만원에 달하는 사납금이 부담이다. 이 회사에서 일하는 김모(43)씨는 “사납금을 회사에서 빼줄 것도 아니고 주간 10만2000원, 야간 12만원인 사납금은 평소와 똑같이 회사에 갖다 내야 한다”며 “하루 벌어 하루 사는데 생계를 맞바꾸는 운행 중단은 가당치도 않다”고 말했다. 서울 장안동에서 만난 또 다른 택시 기사는 “택시가 대중교통이 돼봤자 이득 보는 건 우리 같은 법인 소속 기사들이 아니라 당장 보조금을 받는 택시회사”라며 “개인 사업자인 개인택시는 보조금을 받아 좋을지 몰라도 회사에 꼬박꼬박 사납금을 내는 회사택시 기사는 좋을 게 없다”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에선 예정대로 ‘택시 생존권 사수 전국 비상 합동총회’가 열렸다. 총회에는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등 4개 택시단체 대표와 72개 지역 대표들이 참석했다. 서울과 경기·인천·충청·대구 등 전국 각지에서 택시 기사 2만여 명이 모여 국회의 택시법 재의결을 촉구했다.

 한편 국토부는 “택시업계의 불법적인 집회 참여와 운행 중단 강행은 유감”이라며 “엄정한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이날 운행을 중단한 택시 4만7880대(오후 5시까지 집계)에 대해 원칙에 따라 행정 처분한다는 방침이다. 우선 파업에 참여한 택시업체에 대해서는 유가보조금 지급을 정지하게 된다. 또 택시 감차와 사업면허 취소 등도 검토한다.

글=이지은·유성운·조한대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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