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생활? 적막하고 쓸쓸합니다. 그래서 좋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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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에 내시경으로 어딘가를 들여다보는 것 같은 비밀스러운 느낌, 하늘을 올려다보면 정수리가 열리면서 우주적인 기운으로 내 자신이 확장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어요. 밤이면 풀들이 영혼을 확장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물론 보이지는 않지만. 그게 뭐 내 혼자 착각이겠지, 풀들은 안 그런데. 하하. 시골 생활이 적적한 것도 사실이고 쓸쓸한 것도 사실이에요.

그리고 그럴 거라고 예상을 했죠. 적막하지 않고 쓸쓸하지 않았다면 내가 후회했을 거예요. 마을에서 떨어진 집에 살다보니 생각했던 대로 적막하고 쓸쓸하네, 그래서 참 좋네, 그랬죠. 적막이라는 고놈하고 노는 것도 참 재미있어요.”

1996년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강원도 산골짝으로 들어간 최용건씨는 시골 생활의 묘미가 쓸쓸함에 있다고 말한다. 쓸쓸함과 친해지다니! 온갖 잡음들로 마음이 시끄러운 도시인이라면 상상조차 못할 일이다. 도시인들이 마음이 시끄러운 이유는 딴 데 있는 게 아니다. 마음이 심심한 것을 참지 못하는 것이다. 도시인들은 자신의 마음에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지만 대답을 얻지는 못한다. 마음이 시끄러우니까. 쓸쓸함을 참지 못하니까.

나의 신앙은 조촐한 삶, 신앙의 아이콘은 오두막 불빛
최용건씨는 시골 생활에서 ‘쓸쓸함’이란 친구를 만났고 그 친구와 나눈 내밀한 이야기를 낱낱이 일기로 적었다. 그 일기가 『조금은 가난해도 좋다면』(푸른숲)이란 책으로 묶였다.

‘나에게 신앙이 있다면 오로지 조촐한 삶, 그뿐. 그 신앙의 아이콘은 산골짝의 희미한 오두막 불빛’이라고 시작하는 그의 일기는 계속 독자에게 권유한다. 시끄러운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켜보라고, 조금만 더 천천히 달려보라고. 하지만 거기엔 단서가 붙는다. ‘조금은 가난해도 좋다면’.

1996년 최용건씨는 무작정 도시를 떠났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열심히 작품활동을 하던 그로선 갑작스런 결정이었다. 시골로 떠난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도시 생활에선 그림을 그리기 위한 순수성과 자유가 전혀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시 생활에선 순수도 지키기 힘들고 자유도 보장이 안 돼요. 이런 여건에선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판단이 내려진 순간 무작정 내려왔죠. 내려오니까 순수성하고 자유 이 두 가지가 그래도 99퍼센트는 보장되더라구요. 그러니까 살맛나고 그림그릴 맛 나고 그래요. 무작정 내려갔죠. 시골에 들어오기 위한 준비단계로 귀농학교도 다니고 계획도 많이들 세우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계획세우는 사람은 못내려오더라구요.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못 내려와요. 오히려 저처럼 무대뽀로 내려와야지. 2년 전에 계획세운 사람 아는데 아직도 못 내려왔어요. 시골로 내려온다는 건 양적인 삶보단 질적인 삶을 추구하는 거잖아요. 그건 합리적인 계산에 의해서 되는 게 아니라 무작정, 비논리적으로, 혁명적으로 그렇게 해야돼요. 그래야 시골생활이 돼요.”

하지만 최용건씨의 가난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아무런 준비도 없었고 농사를 지어본 경험도 없었으니 말이다. 아파트를 팔아 땅 1천 평을 사고 돌투성이 밭을 일궈 옥수수농사를 시작했다. 농사 중에서 제일 쉽다는 옥수수 농사를 실패하고 꽃이 예뻐 시작한 도라지 농사도 실패했다.

시골로 내려간지 5년, 이제 겨우 환경에 적응하고 있단다. 최용건씨의 표현을 빌자면 ‘이제 겨우 분수를 깨달았다’. 그는 시골까지 와서 굶어죽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많이 했지만 한편으론 기쁜 마음이 들기까지 했단다. 책에도 그런 구절이 나온다.

“가난이란 무능의 소산이 아니라 깨달음의 소산이다. 마음속에서 필요 이상의 욕심이라든가 사된 기운을 몰아냈을 때에 고여오는 맑고 조촐한 기쁨……. 한마디로 가난이란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최후의 값진 선물이다.”

작년 겨울 틀리고 올 겨울 틀리다
도시를 떠나려고 계획하는 사람들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다. 세상과 담을 쌓고 시골에 가서 푹 파묻혀 살고 싶다는 욕망이다. 얼마나 지긋지긋했으면 그런 맘이 들었겠는가 만은 너무 극단적인 도피가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최용건씨가 누구보다 자유로워 보이는 이유 중 하나도 거기에 있다. 최용건씨는 세상과 담을 쌓고 싶어하거나 모든 정보를 끊어버리겠다는 마음을 먹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홈페이지를 운영하며 수시로 사람들이 드나드는 민박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데서도 그의 심정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제가 호기심이 좀 많아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가장 잘 풀 수 있는 방법이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 생각해서 미술을 시작했으니까요. 그리고 세상사 돌아가는 걸 손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인터넷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홈페이지도 만든 거죠. 은둔자처럼 살기는 싫습니다. 그저 쾌적한 환경 속에서 내 궁금증을 풀어가며 살겠다는 거죠. 도시를 떠나려고 마음먹었을 때 첫 번째 조건은 인구밀도가 희박한 곳이었어요. 찾다보니 인제, 홍천, 영월, 정선 등이 후보로 떠올랐죠.

그런데 영월이나 정선은 풍토가 온화하고 따뜻해요. 그에 비해서 인제는 날카롭고 골이 깊고 한랭한 그런 풍토예요. 아무래도 그림을 그리는 데는 차갑고 날카로운 풍토가 좋을 것 같았죠. 왜 그런 말 있죠. 정신을 벼린다는. 그런 심정으로 들어온 거죠.”

시골에서의 삶은 단조롭기 그지없다, 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최용건씨는 자연을 바라보고 있으면 단 한순간도 심심할 틈이 없다고 한다. 이제 진동리에서 5년을 살았으니 모든 풍광이 익숙할 만도 하건만 늘 새롭기만 하단다. 재작년 겨울과 작년 겨울이 틀리고 작년 겨울과 올 겨울이 틀릴 것이니 심심할 리 없다는 것이다.

최용건씨는 1년에 한 두 번씩 서울에 다녀간다. 서울에 도착하는 첫 순간은 늘 이렇게 느낀다. “야,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이구나.”하지만 금새 마음이 바뀐다. 서울에서의 기억이 순식간에 밀려오고 지하철 계단에서 사람들에게 떠밀려 가고 거리에선 차들에게 떠밀려 갈 때야 겨우 ‘제 정신’을 찾는다. 어디 멈춰 서 있을 곳이 없고 어디론가 가야한다는 부담감은 여전히 그에게 낯설다.

“도회지에서의 쓸쓸함과 시골에서의 쓸쓸함은 근본적으로 달라요. 도회지에선 작업능률을 떨어뜨리는 부정적인 용어겠지만 시골에선 쓸쓸함이 없다면 삶의 의의가 없어지는 거죠. 시골에서 눈에 보이는 건 참 단순해요. 그런데 어느날 그 단순한 것들이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때가 있어요. 억새꽃을 그저 마른꽃 정도로 생각했는데 어느 날 억새꽃이 천식을 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릴 때가 있어요. 그런 발견들이 시골에서의 기쁨이죠. 그런 기쁨 때문에 살아요. 어제 물소리가 오늘 물소리하고 틀리니까 살 수 있는 거죠. 똑같으면 못 살죠.”

무엇이 그리도 초조하고 바쁠 것인가?
진동리 산골짝 최용건씨의 민박집에서 그와 함께 억새꽃 천식 하는 소리를 듣는 건 꽤 멋진 경험이 될 것 같다. 깜깜한 밤 우주의 빛을 받으며 벼랑들 투신하는 소리를 듣는 것은 또 얼마나 멋진 일일까. 단 여기에도 조건은 붙는다. ‘조금은 마음이 심심해도 좋다면’, ‘조금은 불편해도 좋다면’. 그리고 진동리를 찾아가는 길에는 최용건씨의 책 『조금은 가난해도 좋다면』의 이런 구절을 되씹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 세상은 조물주의 중대 결심 끝에 창조된 것, 우리들의 번뇌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들은 그저 그 속에서 웃으며 노닐어주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조물주의 연주를 감상한다거나 음미만 하면 될 일이다. 무엇이 그리도 초조하고 바쁠 것인가? 당신에게 일용할 양식과 잠자리만 갖추어져 있다면 그것으로 세상에서의 할 일이란 더 이상 없다.”
(김중혁/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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