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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16세 때 집에서 쫓겨났던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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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아메리칸 드림’의 화신처럼 살았으면서 한국 공직자로 봉사하겠다고 나선 이, 지독한 가난을 ‘헝그리 정신’으로 이겨낸 기성세대의 영웅이면서 젊은이를 위한 첨단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사람.

 김종훈(53)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에 대한 표현은 그 자체가 모순이다. 그의 삶 속내는 어땠을까. 지난 15년간의 미 언론 인터뷰와 지인들의 증언을 살펴봤다. 유명인사와 심층 대담을 나누는 비영리단체 미국공로학회(American Academy of Achievement)와 미국공학학회(ASEE), 김 내정자가 자선활동을 펼친 워싱턴 지역 언론의 인터뷰 등이다.

 ◆가족,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이름=부모는 그가 5세 때 이혼했다. 아버지는 곧 재혼했고 4남매를 데리고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생활고에 짓눌린 아버지는 아들에게 살갑지 않았고, 세 살 위인 형은 타향살이의 스트레스를 동생에게 풀었다. 부친과의 갈등은 심해졌고 그는 결국 16세 때 쫓겨나듯 집을 나왔다. 그는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16세인 나를 버렸다”며 “나는 마약도, 나쁜 짓도 안 하는 착한 학생이었는데 왜 그러셨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성장기를 ‘바위 밑에 깔린 삶’이라고 표현했다. ‘자살할까, 인생을 걸고 무언가를 해볼까’ 고민하다 ‘지금보다는 나아지겠지’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집을 나와서는 평소 그를 아껴주던 학교 수학선생님의 집 지하실에서 살았다. 밤새 편의점과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학비를 벌고 방세도 냈다. 차비가 없어 수업이 끝나면 빈 교실에서 수학선생님을 기다렸다. 이 서너 시간이 유일한 수면 시간이었다. 그는 성공한 후에 딸들에게 가난이 무엇인지를 가르치려 했다. 1년에 한두 차례 비행기 3등석에 딸들을 태워 한국에 왔고, 그때마다 빈민촌의 독거노인을 찾아갔다. 몇 차례 이를 동행한 지인은 “딸들에게 할머니 방에 들어가 손도 잡아드리고 얘기를 나누며 수발 들게 하더라”며 “돌아오는 길에는 ‘아빠도 이랬었어’라고 말하곤 했다”고 회상했다.

 ◆‘실패’ 낙인 딛고 재창업=영어는 오랫동안 그를 괴롭혔다. 어눌한 영어실력 탓에 고교 때 학교 감사관은 “지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며 별도로 IQ 검사를 받게 했다. 분석력과 이해력이 뛰어나고, 기억력은 그것만 못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는 생각했다. ‘외울 게 많은 의사는 안 되겠군. 말도 못하니 변호사도 어림없지. 천상 물리학자나 공학자가 되어야겠다’. 진로가 결정된 순간이었다. 1978년 수학선생님이 그에게 애플의 퍼스널 컴퓨터를 보여줬다. 그는 즉시 여기에 빠져들었고 ‘잡스가 했는데 내가 못하란 법은 없지’ 하며 꿈을 키웠다.

 대학 시절, 교수가 창업한 ‘디지투스’라는 IT벤처에 합류해 지분까지 소유했지만 회사는 몇 년 못 가 기울었다. 해군 월급까지 회사에 갖다 바쳤지만 실패로 끝났다. 박사를 마치고 통신장비 회사를 차리려 했지만 투자자를 찾지 못했다. 집을 저당잡히고 마련한 40만 달러로 1인 기업을 차렸다. 미 중소기업청에는 사회적 약자들이 세운 기업이 정부 과제를 경쟁 없이 따도록 해주는 프로그램이 있어 사람들은 지원해보기를 권했다. 그러나 그는 ‘가산점에 기대면 자생력이 없다’는 생각에 신청하지 않았다. 이 기간 아내가 생계를 꾸렸고, 갓 돌을 지난 큰딸은 얼굴 볼 시간도 없었다. 그는 “죄책감 때문에 딸의 이름 ‘유리’로 회사명을 바꿨다”고 말했다.

 ◆그에게 ‘한국’은=그를 공직에 부른 것은 박근혜 당선인이지만 먼저 인연을 맺은 것은 고(故) 김대중 대통령이다. DJ 정부 초기인 1998년, 막 유리시스템스를 매각한 김 내정자는 금의환향했고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 DJ는 그해 6월 미국 방문 때 공개 석상에서 그의 성공사례를 몇 차례 언급했고, 백악관의 DJ 환영 만찬에는 김 내정자도 초대받았다. 그는 이 자리에서 “외환위기를 맞은 한국의 조흥은행에 2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후 그가 “정부 지원이 전제되지 않으면 투자하기 어렵다”고 해 이는 무산됐다.

심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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