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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풍속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옷은 시대풍속의 거울이라고 한다. 짐승은 계절에 따라 털을 갈지만, 인간은 문명의 영향속에서 의상을 개조해간다. 어느 문명비평가는 여자의 「스커트」길이로써 문명의 건강을 점칠수 있다고 말한적이 있다. 즉 여자의 「스커트」길이가 짧아질수록 문명은 부패하고 타락해지는데 역사적으로 고찰해보면 1차대전직전과, 그리고 바로 오늘날이 그렇다는 것이다. 영국의 「펍·송」에 『야, 모두들 짧구나...』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여성들의 「스커트」가 무릎까지 올라온 「미니·스커트」의 풍조를 상징한 것이다. 추운 겨울에도 그런 짧은 「스커트」를 입고 다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감기환자들이 해마다 증가해 가고 있다고 한탄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그래서 예술평론가 「에릭·길」은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것은 이성을 가졌기 때문인데, 의복을 입는 경우에만은 웬일인지 비논리적이어서 그 이성을 찾아 볼 길이 없다고 했다.
한국의 의상풍속은 어떤가? 가을 바람이 불면서 부터 정장을 차려 입고 나온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너나할것없이 미끈한 「라운지·슈트」에 근엄한 「넥타이」…. 사무실로 일하러 가는 사람처럼은 보이지 않고 모두가 「파티」장으로 행차하는 것 같다. 양복의 본 고장인 구미각국에서는 일하러 갈 때의 「작업복」과 「파티」나 「회의석상」에서 입는 옷이 구별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선 전천후신사복으로 일관하고 있다.
정장을 하고 사무를 본다는 것은 비능률적일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손해가 많다. 해어지기쉬운 팔꿉과 소매를 가죽으로맨 영국인의 사무용복은 대를 물려가면서 입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옷은 웃저고리와 바지 빛깔을 통일시킬 필요도 없어서「즈봉」과 함께 언제나 운명을 같이하기마련인 우리들의「웃저고리」의 신세와는 다르다.
남의「스커트 길이」를 모방하는데는 천재이면서도 건실하고 경제적인 그쪽의 의상풍속은 왜 배우려들지 않는가? 신생활복을 부활시키자는 얘기가 아니라, 적어도 외출복과 사무복만은 구별해서 입을 줄 아는 의생활의 혁신이 있어야겠다. 자고로 의상풍속은 노동과 활동의 문명이 우리에게 결핍해있음을 암시해 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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