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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악의 축' 연설문 작성 프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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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1년 전인 지난해 1월 29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북한.이라크.이란을 '악의 축(axis of evil)'이라고 못박아 세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당시 연설문 작성을 맡았던 데이비드 프럼이 최근 '적임자(The Right Man.사진):부시의 놀라운 대통령직'이란 책을 펴냈다.

직접 경험한 백악관의 속사정을 다룬 이 책에서 프럼은 '악의 축'의 탄생 비화를 공개했다. 그의 얘기를 직접 들어봤다.

-'악의 축'이 나오게 된 경위부터 설명해 달라.

"알 카에다와 이라크 등 몇몇 나라에 대해 부시 대통령이 하고 싶어하는 얘기를 글로 만들어 보라는 요청을 받았다. 나는 현재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적은 냉전시대의 소련과는 다르다는 점에 주목했다. 도덕적으로는 소련도 매우 나쁜 존재였지만 그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 행동에 따르는 위험을 잘 계산했다.

그러나 현재의 적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무모하게 위험을 무릅쓴다. 그들은 계산하지 않는다.

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표현을 연구했다. 그래서 1940년대 세계정치를 들여다본 것이다. 당시 추축국(the Axis)이었던 독일.일본.이탈리아는 무모하다는 점에서 현재의 적들과 비슷했다.

미국의 10분의1에 불과한 공업력을 갖고 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제정신이었겠는가.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행동은 일본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축에다 '증오(hatred)'를 붙여 '증오의 축'이란 말을 만들어 낸 것이다."

-'증오의 축'이 '악의 축'으로 바뀌었다는 얘긴가.

"연설문 작성팀장인 마이클 거슨이 고쳤다."

-부시 대통령의 지시 때문이었나. 부시는 어느 정도나 개입했나.

"연설문 작성자들이 하는 일은 대통령에게 여러 선택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국정연설 같이 중요한 연설문이 확정되는 데는 행정부의 수많은 사람이 관여한다. 시일도 6~8주가 걸린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의중이다. 대통령은 매우 깊숙이 관여한다. 그는 여러 안 중에서 맘에 드는 것을 고른다. 그가 좋아하지 않는 표현은 5분도 못돼 사라진다. 많은 이가 이런저런 안을 내지만 결정하는 사람은 대통령 1인이다. 그것이 내 책의 주제이기도 하다."

-'악의 축'이란 표현이 결과적으로 부시 대통령에게서 나왔다고 봐도 되나.

"모든 것이 그렇다. 모든 결정은 그의 생각이다."

-'증오의 축'이라고 썼을 때 당신은 이라크 정도만을 생각했다고 하던데.

"그렇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안보 보좌관이 이란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나중에 북한이 추가됐다."

-북한을 추가한 것은 누구인가. 부시 대통령인가.

"'악의 축'의 정의에는 독재.테러지원.대량살상무기 추구 등이 들어간다. 그러니 어떻게 북한이 들어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구체적으로 누가, 언제 북한을 집어넣었는지는 모르겠다. 논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들어갔을 것이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도 세 나라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 데 관여했나.

"국정연설 같은 중요한 연설문은 모든 관계부처에 회람된다. 그들도 연설문 초안을 읽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악의 축' 표현에 대한 반대는 없었나.

"지금 얘기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 나는 결정과정의 전부를 언급할 생각은 없다."

-미국이 규정한 테러지원국 7개국 중 3개국만 '악의 축'에 포함됐다. 나머지 4개국은 왜 빠졌나.

"그들은 3개국처럼 대량살상무기를 아주 심각하게 추구하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그들은 세 나라처럼 임박한 위험은 아니다."

-'증오의 축'이라고 썼던 사람으로서 '악의 축'으로 바뀐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주 잘 고쳐진 것이다. 북한의 실상을 들여다보고 이를 악이라고 얘기하지 않는 사람은 도덕적으로 죽은 것이다."

-당신은 언제부터 부시 대통령을 도왔나.

"나는 원래 부시 선거팀 멤버가 아니었다. 언론인이었고 작가였다. 부시팀은 그동안 내가 쓴 글을 좋게 평가했던 것 같다. 2001년 1월 20일 부시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연설문 작성팀장이었던 거슨이 같이 일하자고 해서 고민 끝에 승낙했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데이비드 프럼은…>

데이비드 프럼은 유대인 혈통에 캐나다 국적을 갖고 있다. 예일대를 거쳐 하버드대 법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프럼은 2001년 부시 대통령의 연설문팀에 합류하기 전까지 월스트리트 저널.포브스 등 유력지에 보수 성향의 칼럼을 기고했다.

1994년 그가 쓴 '우익은 죽었다'는 칼럼은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악의 축' 연설 직후 프럼의 부인은 친지들에게 e-메일로 '악의 축'이 남편의 작품이라고 자랑했다. 그후 프럼은 백악관을 떠났고 현재 보수적인 미 기업연구소(AEI)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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