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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비허구의 허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근년에 동서양을 막론하고「논픽션·붐」이 일어나서, 한국에서도 법석을 띨어온지 수삼년. 최근에, 영국인 모줄리의 일와 히로히또의 일부가 번역되어 어떤 일간지에 실리더니, 벌써 그 전역이 책사에 나왔다. 그것도 한가지면 족할텐데, 자그마치 세가지나 나왔다.
논픽션 중에서도 중요한 인물의 전기나, 본인이 쓴 회고록 같은 것은 정사나 공식기록의 「베일」에 가려진 역사의 이면을 드러내 보여 줄 수 있는 것으로. 큰 관심을 모은다. 역사가 어떤 조직이나, 이념 따위 비인간적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결국 퓌어난 소수 인물들의 지혜와 용기와 성격에 의해서 만들어 진다는 생각이 아직도 살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케네디를 주제로 하는 회고록이 벌써 두가지나 나왔고 내달에는 공보비서로 있던 샐린저의 회고록이 나온다. 이 세가지가 다시 각각 세가지 씩으로 번역되어서 장안의 지각을 울리게 될까 걱정이지만, 아무리 많은 회고록이 나온대도 케네디의 매력을 완벽하게 재생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모든 전기와 회고록에는 하나의 함정이 있다. 즉 같은 인물, 같은 사건을 그려도 저자나 관찰자의 주관에 따라 차이가 생기고, 문제의 핵심은 여전히 비밀의 장막 뒤에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가령 「존슨」 상원의원이 케네디의 러닝 메이트로 나설 것을 수락한 경위가 그것이다. 얘기가 다 다르고 들으면 들을수록, 분명치가 않다.
모 이런 종류의 논픽션에는 거의 숙명적인 아이러니가 있다. 세상에는 역사의 주인공들이 쓴 자서전이나 회고록이 많고, 그들이 세인의 추앙을 받는 인물이면, 그러한 기록들은 흥미진진한 읽을 거리가 된다. 그러나, 우리가 진실로 알고 싶은 인물들은 흔히 한권의 자서전도, 한펀의 회고록도 남기지 않고, 말 없이 사라져 간다는 것이 묘하다. 케네디가 그랬다. 희대의 악역 히틀러의 2차대전 회고록이 있다면 한국서 만도 적어도 열다섯가지의 번역으로 나 올 법하다. 진짜 값있는 회고록을 쓸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던 이승만박사 역시 함구무관으로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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