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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중국 경제 대장정] 29. 끝 통일비즈니스의 전초기지-단둥

중앙일보

입력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을 마주보는 중국 최대의 국경도시다. 하루 두번 개방되는 중조우의교(中朝友誼橋)로 화물을 가득 실은 트럭들이 압록강을 건너 신의주로 들어간다.

해가 저물면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단장하는 단둥과는 달리 강건너편 신의주공단은 반딧불처럼 여린 불빛만 드문드문하다.

몇십년전에는 신의주쪽이 더 밝았으나 지금은 북한의 경제난으로 명암이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다. 북한은 그 잃어버린 '국경의 밤'을 되찾기 위해 한국기업과 함께 '단둥.신의주 IT밸리'구상을 펼치고 있다.

압록강변 단둥 변경경제합작구의 후이유(匯友)빌딩 1603호. 올해 중국땅에 최초로 세워진 남북합작 IT기업인 하나프로그램센터가 입주한 곳이다.

창밖으론 북한.중국을 잇는 중조우의교와 한국전쟁때 미군폭격으로 끊긴 압록강단교(鴨綠江斷橋)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이성계(李成桂)가 군사를 돌린 위화도(威化島)도 손에 잡힐듯하다.

사무실엔 삼보컴퓨터 선양(瀋陽)공장에서 사온 PC가 두줄로 늘어서 있고 북한 프로그래머들이 능숙한 손놀림으로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눈이 마주치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기만 한채 눈길은 다시 모니터로 향한다.

이곳은 대북교역 컨설팅사인 하나비즈닷컴과 북한의 남북경협 담당기관인 민족경제협력연합회 등이 올8월 문을 열었다.

자본금은 30만달러. 남북이 각각 6대 4로 투자했다. IT기업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단둥에 자리잡은 것은 북한과 가까운데다 경의선이 이어지면 서울까지 4시간만에 갈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북한은 IT에 상당한 투자를 해 나름대로 고유기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세계시장에 통하는 기술을 제대로 골라내기만 하면 경쟁력은 충분합니다. 다만 자본주의 시장에 나와 이익을 내보려는 시도를 해본 적이 없을 뿐입니다."

지난 7월 한국시스템공학연구소에서 이곳으로 자리를 옮긴 이상산(李相山.40)사장은 북한의 IT기술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한다.

북한의 IT산업은 대륙과 떨어져 특이한 진화를 해온 갈라파고스섬처럼 세계시장과 격리된채 독자적인 발전의 길을 걸어왔다고 한다. 잘 알려지지 않고 겉으로는 뒤져보이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기형적으로 발전한 기술들이 분명 있다는 것이 李사장의 설명이다.

세계최강의 기력(棋力)을 인정받은 바둑게임 소프트웨어 '은별'이 대표적이다. 조선컴퓨터무역센터가 개발한 '은별'은 컴퓨터 바둑프로그램의 한계로 거론되던 3급 인증서를 일본기원에서 따내기도 했다.

대국해본 일본 프로기사들은 "2급도 충분하다"고 한다. 또 북한 독자의 한글운영시스템(OS)이나 여러나라 말로 된 키워드로 원하는 컨텐츠를 찾아내는 교차언어 검색엔진도 한국보다 낫다고 한다. 이들가운데 '은별'처럼 숨은 'IT진주'를 찾아내 갈고닦아 세계시장에 선보이는 것이 李사장의 숙제다.

그가 세운 비즈니스모델은 북한의 IT기술을 최대한 상업화하는데서 출발한다. 당장 손쉬운 것은 북한의 고급 IT인력을 우선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에 파견하는 것이다. 곧이어 한국내 기업으로부터 프로그램 제작을 직접 수주받거나 독자적으로 '이러이러한 프로젝트를 해줄테니 돈을 대시오'라며 제안도 할 계획이다.

그가 거느리고 있는 북한 엔지니어는 40명이며 회사규모가 커지면 1백20명까지 늘릴 수 있다. 모두 김일성대.김책공대 등 명문대 출신인데다 5~10년의 경력을 지닌 북한 최고의 IT엘리트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프로그램센터는 지금까지 저임을 노린 임가공 위주의 남북협력사업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을 달리 한다.

북한기술이 자본주의 시장에서 경쟁력을 지니는지 검증해보는 최초의 시험대가 될 수도 있다. 李사장은 "북한기술을 이용해 상업적으로 경쟁력 있는 기업을 키워내는 것이 목표"라며 "장기적으론 중국 증권거래소 상장도 검토중"이라고 말한다.

대주주인 하나비즈닷컴도 돈 벌겠다고 시작한 것이고 북한측도 이를 받아들이고 있으므로 정치색은 처음부터 벗어났다고 한다. 합작기업을 국경밖에 처음 세운 것도 'IT는 닫아놓고는 키울 수 없다'는 북한측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봐도 된다. 이사회를 열면 북한측 이사 4명이 예정돼있던 공식일정을 취소하고 중조우의교를 건너올 정도로 북한도 신경을 쓴다.

"남북관계에 따라 다소간의 굴곡이 있을지 몰라도 북한의 큰 방향은 역시 개방일 겁니다. 이곳서 남북기술협력에 성공하면 단둥이 동북아의 기술개발단지로 부상할 수도 있습니다."

이곳의 5백12kb짜리 전용회선이 단둥 최고의 고속통신망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비장한 각오와 큰 포부를 담은채 해야 할 말이다. 그러나 李사장은 '언젠가 당연히 그렇게 될 것 아니냐'는듯 예사로이 말했다.

이정재(경제연구소).남윤호(도쿄 특파원).양선희(산업부).정경민(경제부)기자
yh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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