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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중국 경제 대장정] 28. 삼보컴퓨터가 선양으로 간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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랴오닝(遼寧)성의 성도 선양(瀋陽)은 1636년 청(淸)이 나라를 세우면서 첫 수도로 정한 곳이다. 20세기초에는 일본 관동군이 침략전쟁을 본격화하기 위해 일으킨 만주사변의 무대이기도 하다.

일제 시절 남겨진 산업시설을 기반으로 선양은 한때 중국 최대의 중공업도시로 번성했다.공장매연으로 스모그가 너무 심해 미국의 정찰위성이 유일하게 내려다보지 못하는 곳이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

그러나 연안지역에 비해 개방·개혁이 뒤늦은 탓에 스모그만큼이나 지독한 실업과 불황의 홍역을 앓고 지금은 외자유치에 팔을 걷어부쳤다.

선양의 삼보컴퓨터 이윤식(李允植)사장은 공장을 안내하면서 늘 자랑하는 것이 있다.그가 “거의 세계 유일일 것”이라며 가리킨 것은 엉뚱하게도 공장복도 바닥이다. 바닥엔 제조공장에 어울리지 않게 반질반질 광이 나는 고급타일이 깔려있다.

1999년 외자유치를 위해 선양시가 공장을 지어주기로 하자 삼보측은 공장구조를 정해준뒤 으레 하는 인사말로 “잘 부탁한다”고 당부했다.그러자 설계에 들어 있지도 않던 타일바닥이 덤으로 딸려왔다.

선양시의 이런 ‘배려’는 PC 외장케이스를 조립하는 공정에서도 눈에 띤다.삼보에 납품하기 위해 한국에서 동반진출한 연일전자와 공장벽을 완전히 터 한지붕으로 지어놓았다.

삼보 직원들은 생산량에 맞춰 마치 자기창고에서 자재 꺼내가듯 연일전자의 외장케이스를 가져다 쓴다. 아무도 공장경계선을 의식하지 않는다.트럭으로 날라와 내리고 정리하는 작업이 없어져 공정도 단축되고 비용도 아낄 수 있다고 한다.

선양시는 공장위치를 정할 때부터 삼보를 ‘상전’으로 모셨다.삼보가 “이곳이 좋겠다”고 하자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공단 조형물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부지를 가로지르는 멀쩡한 기존 도로도 방향을 틀었다.

한국기업이 중국 지방정부로부터 이 정도 대접을 받는데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이 나겠는가.

“인허가 받으러 돌아다닌 적이 없습니다.행정수속이 필요하면 공무원이 직접 찾아와 처리해주더군요.공장건설이 6개월만에 끝나 날림공사가 아닐까 걱정도 했지만 실제 들어와보니 거의 완벽합니다.”

李사장의 말을 글로만 옮겨 놓으면 도저히 중국얘기로 들리지 않는다.마치 1995년 삼성전자가 영국 윈야드에 컬러모니터 공장을 세울 때 현지 정부로부터 받던 대우를 연상시킬 정도다.삼보컴퓨터가 선양으로 간 까닭은 바로 거기에 있다.

사실 선양은 처음부터 삼보의 입맛에 쏙 드는 곳은 아니었다.물류·임금 등 15가지 잣대로 따져본 결과 8개 항목은 통과했지만 7개가 미달이었다. 낙제점을 겨우 면한 선양을 낙점한 것은 시정부의 열성과 파격적인 대우에 끌렸기 때문이다.

이미 국제기업들이 진을 치고 있는 상하이(上海)나 광둥(廣東)성은 한국기업에 특별한 지원을 해줄 이유가 없었다. 또 세계굴지의 대기업 그늘 밑으로 들어가는 것도 삼보로서는 부담이었다.물류가 편한 다롄(大連)은 일본기업의 위세가 신경 쓰여 피했다.

이런 고민을 하던 참에 선양시는 솔깃한 제의를 해왔다.공장건물을 지어주는 것은 물론 설비리스도 지원해주겠다는 것이었다. 돈으로 따지면 2천5백만달러어치로 삼보측 투자분 1천만달러의 2.5배나 되는 셈이다.

선양시가 외자유치를 위해 쌈지돈까지 털어낸 것이다.

삼보는 마침내 1999년 3월 선양시와 투자계약을 맺었다.선양첨단단지 IT기업 입주 1호였다.한다면 하는 중국 공권력의 불도저식 추진력 덕에 공장은 초스피드로 지어졌다.그해 10월 완공,11월 생산 개시,연말 수출로 착착 이어졌다.

선양시가 왜 이렇게 외국기업 모시기에 열심인가.여기에는 과거 중국 1위의 중공업도시에서 1980년대 후반 이후 중국 1위의 고실업 도시로 전락해본 경험이 배경이 됐다.

연안 집중개발에 밀려 선전(深土+川) 등에 우후죽순으로 새 기업들이 들어서는 동안 선양 기업들은 경쟁력을 잃고 도산사태를 맞았다.또 정부의 대대적인 국영기업 구조조정으로 실업자들은 거리에 넘쳤다.

외국기업들이 선양에서 수입선금을 주면 실업수당으로 다 빠져나가고 정작 물건을 제대로 납품을 못 받는 경우가 허다했다.

일본의 한 종합상사 前다롄지사장은 “1998년말 선양의 실질적인 실업률은 50%에 달해 사회불안이 일어날 정도였다”며 “이를 계기로 시정부가 외자유치에 적극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한번 쓴잔을 마셔보고 나서야 외국자본의 값어치를 깨닫게 된 것이다.

선양시의 기대대로 삼보는 금방 투자효과를 냈다.지난해 수출은 3억달러로 선양시 전체 수출(12
억달러)의 25%를 차지했다. 인근의 LG전자의 수출이 1억달러이므로 한국기업 두곳이 선양시 총수출의 3분의 1을 짊어진 셈이다.

근로자도 1천여명을 고용했다.삼보에 납품하는 부품업체들까지 감안하면 고용효과는 이보다 더 크다.

삼보는 내친 김에 내수에도 진출해 내년말 동북3성에서 베이더팡정(北大方正)·IBM을 제치고 2위로 올라선다는 목표다. 순조롭게만 진행되면 삼보의 선양진출은 한중 모두가 이익을 내는 ‘윈윈게임’이 되는 셈이다.

한국은 국부유출을 억제하면서도 투자이익을 얻고 중국은 수출과 고용을 늘렸다.사소한 타일바닥을 뽐내던 李사장이 말미에 “양쪽의 부담과 위험을 최소화하고 효과를 최대화했다”며 거창한 자랑을 덧붙인 것도 이때문일 것이다.

이정재(경제연구소).남윤호(도쿄 특파원).양선희(산업부).정경민(경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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