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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리뷰] DVD로 보는 '엽기적인 그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DVD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어떤의미일까요? 화질의 변화없이 장기간 영화를 자신의 집에서 뛰어난 음질과 화질로 반복해서 볼 수 있다는 것은 DVD의 가장 기본적인 미덕입니다. 그리고 서로간의 장단점이 있지만 그러한 분위기로 DVD를 본다는 것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경험과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경험을 DVD가 보여주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매트릭스와 스타워즈 에피소드1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횟수보다 특정 챕터들만을 반복해서 보게되는 횟수가 더 많다는 것은 오히려 DVD가 일반적으로 영화를 본다는 경험과는 달리, 좋아하는 곡들을 선곡해서 듣는 것과 같이 CD로 음악을 듣는 경험에 가까운 습관을 가지게 합니다. 저의 경우 영화 다크시티의 예고편을 영화본편보다 더 자주보게 됩니다. 예고편에서 사용된 음악을 본편에선 들을수가 없거든요.

더 중요한 차이들도 있죠. 극장판에선 삭제되었던 씬들이 추가된 것을 본다던지, 미처 보지 못하였던 섬세한 장면이라던가 애매모호하였던 설정을 감독이나 배우, 제작스텝의 육성으로 설명을 듣는다던지 혹은 제작다큐를 DVD를 통하여 접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채택되지 못하였던 장면의 스토리보드를 보게 된다던가 혹은 본편과는 다른 결말을 볼 수도 있죠.

물론 이러한 서플들은 그 영화에 대한 환상이나 완성도를 깨트릴 수 도 있는 부분이기에 특정 작품에 대해선 어떠한 서플도 없이 DVD를 제작하고 싶어하는 감독도 있을 것이고, 자신의 모든작품들에 대하여 서플을 전혀 고려치 않는 감독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영화에 있어선 DVD를 통하여 그러한 서플들을 접하게 된다는 것이 영화관에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가지게 한다던가, 감동의 깊이를 배가하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영화자체보다 오히려 서플을 접하고픈 목적으로 DVD를 구매하고 있는 유저들이 많이 있습니다.

엽기적인 그녀 (이하 '엽녀')의 곽재용감독은 반칙왕의 김지운감독만큼이나 DVD의 신봉자인가 봅니다. 엽녀 DVD를 보고 있노라면 감독의 DVD라는 매체에 대한 애착을 곳곳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엽녀 DVD는 영화관에서 보지 못한 저에게도 이 영화의 팬으로 만들어 버리는 마력이 있네요. 그리고 그 마력의 핵심은 바로 감독과 차태현의 공동 코맨터리가 아닌가 합니다. 감독의 이 영화에 대한 해설은 저에게 있어, 해설없이 보았을 때 받았던 밋밋한 느낌을 좀 더 깊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그렇다고 딱딱한 이야기만을 하는 것도 아니고, 담배불도 붙이고, 중간에 걸려오는 핸드폰도 받으면서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배우 차태현과 함꼐 유지하면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녀와 견우의 스쿼시 장면을 한 장면 한 장면 넘겨보면서 전지현이 미니스커트안에 짧은 반바지를 입었음을 알게될 땐 DVD가 항상 좋지만은 않은 미디어임을 깨닫게 됩니다. ^^;)


영화는 크게 4부분으로 나눌수 있습니다.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 연장전과 그리고 오프닝이죠. 오프닝은 전-후반부로부터 2년뒤의 시점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오프닝은 바로 연장전의 초반씬이기도 합니다. 의외의 오프닝을 엽녀는 보여주고 있는데, 이 오프닝의 느낌을 감독은 앤딩에서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반전에서 그녀와의 첫만남이후 끊임없이 당하기만 하였던 견우는 결국 후반전에서 그녀와 헤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연장전에서 그녀의 마음속의 죽은 함백 소나무를 들어내고, 그가 새로이 심었던 소나무처럼 그녀의 마음속에 자신의 사랑을 제대로 심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그녀가 탈영병에게 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나는군요.

"사랑이 뭔지 더 알려면, 우리모두 더 살아봐야 된다구요."


엽녀는 모두 알다시피 99년 김호식씨가 PC통신에 자신의 경험에 허구를 더하여 글로 올리면서부터 이미 선풍적인 인기를 끈 원작이 있는 영화입니다. 너무 인기가 있었던 나머지 중간에 자신이 원작자임을 허위로 자청하며 그녀와의 노골적인 설정(?)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도 잠시 등장하기도 했을 정도로 당시 엽녀시리즈는 장안의 화제였었습니다. 서플디스크에서 인터뷰를 통한 원작자의 실체(?)을 볼 수 있습니다.


엽녀에는 세가지 영화속의 영화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이것은 그녀가 시나리오 적는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삽입된 설정입니다. 가장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역시 소나기이지만 이중 가장 중요한 에피소드는 데몰리션 터미네이터입니다. 그녀의 미래인에 대한 동경이라던가 감독의 시간이동에 대한 동경이 그대로 녹아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또한 원작을 패러디하고 있기도 하죠. 데몰리션 터미네이터의 경우 제목에선 데몰리션 맨과 터미네이터를 패러디하고 있고 연출면에선 매트릭스를 연상케 합니다. 소나기는 황순원의 소나기를 역시 패러디하고 있으며, 비천무림애가는 제목과 연출에선 비천무, 내용에선 감독이 이야기하고 있다시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를 패러디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지하철에서의 따귀때리기에서 전지현의 엑센트는 넘버3의 송강호의 그것을 패러디하고 있으며 억수탕 삭제씬중의 하나는 거짓말을 패러디하고 있기도 합니다.


영화 엽녀는 두시간의 러닝타임을 맞추기 위하여 감독이 애초에 포함시키기 원하였던 작품들을 삭제하여야만 했습니다. 120분의 극장 상영시간이 DVD에선 137분으로 늘어났습니다. 이외에도 여러 추가씬들을 DVD를 통하여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영화속의 어떤사운드를 좋아하시는지요? 저의 경우 오히려 총격씬이나 폭발씬등의 과격한 사운드보다는 잔잔한 소리를 더 좋아하는 편입니다, 공간의 구석구석을 메우는 듯한 대화라던가 적절한 공명과 함께 우퍼를 천천해 때려대는 드럼소리 혹은 영화 세븐의 도서관에서 울려퍼지는 G선상의 아리아나 어메리칸 사이코의 디스코텍과 같은 폐쇄된 홀에서 조금은 왜곡된 소리로 그 공간의 깊이를 느끼게 해주는 사운드를 좋아합니다.

엽녀 DVD는 그러한 공간감을 느끼게 해주는 장면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이들이 찾아가는 카페나 술집등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인데, 오히려 디스코텍이나 데몰리션 터미네이터에선 기대이하의 사운드를 들려줍니다. 특히 데몰리션 터미네이터에선 5.1채널 활용도는 높으나 총격소리가 입체감있게 날아가는 소리가 아닌, 센터와 리어등의 한군데에서만 머뭄으로써 오히려 탈영병체포시의 단 몇방의 총격보다 못한 사운드를 들려줍니다.

그런의미에서 견우가 십계명을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신승훈의 I Believe는 홀의 음장감이 아닌 뒷장면과의 연결을 감안하여 스튜디오 음장감으로 흘러나오고 있지만 엽녀에서 영화와 가장 어울리는 훌륭한 사운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때 카메라는 두사람을 번갈아 보여주며 돌리기를 합니다. (그녀와 견우의 입에 장미가 교차되는 장면을 캡쳐해 보았습니다. ^^;) 신승훈이 차태현에게 진 과거의 빚 때문에 어떻게 작곡가 김형석의 I Believe를 받아 OST에 참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코맨터리로 들을수 있습니다.


그녀와 견우와의 첫 대면장소였던 지하철에서 잠시 보였었던 바로 그 할아버지입니다. 이 할아버지는 과연 누구일까요? 그림이 작아 자세히 보여드리긴 힘들지만 우측의 그림에서 그녀가 바라본 것은 바로 UFO입니다 (그녀의 시선아래 자그마한 점). 할아버지는 바로 그녀가 그토록 만나고 싶어한 미래로부터 UFO를 타고 온 미래인이자 미래의 견우이기도 합니다.


연장전과 함께 영화는 끝납니다.

사실 조금은 약한 반전이 아닌가 합니다. 이미 영화의 시작과 함께 얼마든지 추측이 가능한 설정이었으니 말입니다.

선입견만 가지고 보지 않는다면, 엽녀는 진지현의 시월애를 좋아하신 분들이나 차태현이 아주 잠시 출연하였던 할렐루야를 좋아하신 분들 모두 좋아할 만한 영화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서플디스크는 미로와도 같이 영화 엽녀에 관한 수많은 정보들을 담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스터 에그내에 이스터 에그가 있을정도로 이 디스크가 담고 있는 장면들을 모두 찾아내는 것 자체가 조금은 힘들도록 되어있습니다만, 곽감독의 의지가 반영되어 엽녀 영화에 관한 거의 모든 것들이 이 한 장의 서플 디스크에 담겨져있습니다.

또한 이 모든 서플들에는 한글자막이 지원되고 있으며 또한 각각의 메뉴화면들은 OST의 음악과 함께 만들어져 유저들을 심심치 않게 합니다. 서플디스크를 플레이하게되면 전지현의 엽기적 연기가 영화 본편 디스크와 마찬가지로 조금은 길게 진행이 되는데, 이를 스킵하기위해선 리모콘의 빨리돌리기를 선택하여야 합니다. 메뉴버튼이나 스킵버튼은 먹지 않습니다.

영화보다 더 엽기적으로 재미있는 서플디스크를 살펴보도록 하죠.

■ 디스크사양
상영시간: 137분 (영화본편)
지역코드: 3번
디스크수: 2장
출시사: 스타맥스
화 면 비: 1.85:1
더빙언어: 한국어 (DD5.1 및 2.0)
서브타이틀: 한국어 및 영어

■ 서플먼트
- 아래참조 (총점: 4.6점/5점)


이장면은 여러 스텝들이 지하철의 흔들거림을 표현하기 위하여 바깥에서 정지한 지하철을 양옆에서 흔들고 있는 메이킹부분을 보면 더 상세하게 보실수 있습니다.


감독이 코맨터리에서 관객들이 이 작품을 러브레터와 비교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습니다만, 사실 엽녀는 러브레터와 닮은점이 별로 없습니다. 굳이 연관성을 찾자면 죽은 남자를 못잊어하는 여자와 그녀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남자가 있다는 설정이 닮았을 뿐. 하지만 감독의 코맨터리를 듣기전에도 영화의 시작과 함께 저는 자연히 이 영화를 러브레터와 비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김형석의 음악이 러브레터에서의 레미디오스의 그것과 분위기가 너무 닮아있었기 때문입니다.

■ 화질
러브레터 코드2 DVD와 비교를 해보면, 엽녀 DVD의 화질이 콘트라스트적 측면에선 더 좋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DVD를 위하여 좀 더 무겁게 색보정을 더 했다고는 하나, 엽녀 DVD는 필름적인 색감을 내지 못하고 오히려 TV드라마에 가까운 색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같은 만화적 쇼트들를 보여주고있는 영화인 러브레터가 과도하게 사용된 필터링으로 인한 뿌연 파스텔톤의 화질에도 불구하고, 흑백영화와도 같은 흰색눈과 흑색의 의상과의 대조 및 무거운 색을 적절히 사용함으로써 영화의 주제에 부합하였다면 역시 엽녀는 멜로 코미디장르에 맞는 색감을 사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총점: 3.8점/5점)

■ 음질
엽녀는 사운드를 즐길 만한 영화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사운드를 들려주는 장면들이 몇군데 있습니다. 위에서 소개한 십계명장면과 함께 영화속의 영화, 3가지 에피소드장면들은 모두 사운드를 즐길수 있는 장면들입니다. 입체감이 조금은 부족한 듯하지만, 사방에서 들려오는 총격소리가 괜찮은 데몰리션 터미네이터, 천둥소리와 함께 빗소리의 중간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소나기 그리고 조금은 정형화된 칼소리가 오히려 귀를 거슬리게하지만 흘러나오는 배경음악과 빗소리는 스토리의 코믹함과는 달리 비장감을 느끼게하기에 충분합니다.

엽녀는 몇군데 그렇지 않은 장면들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견우의 1인칭 시점에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센터에서 상대적으로 강하게 울려나오는 견우의 독백과, 그녀와 견우와의 대화가 주위의 효과음과 어울리지 못하고 어떤면에선 영화에의 몰입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십계명 장면을 포함한 카페나 술집이 등장하는 장면에서의 음장감은 DVD유저로 하여금 마치 그 장소에 있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합니다. 감독은 DVD를 위하여 사운드를 리믹스하였습니다. (총점: 3.8점/5점)

■ 나가면서

이런생각을 한적이 있었습니다. '극장개봉시,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함께 외면받았던 작품이 막강한 사운드와 서플과 함께 DVD타이틀로 등장한다면 어떠한 결과를 맞이할까?' 하구 말입니다.

여러분들의 DVD구매 선택기준은 무엇입니까? 화질? 음질? 서플입니까? 가끔은 DVD를 통하여 너무 감각적으로만 영화를 보려는 듯한 의견들이 안타깝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역시 DVD의 선택도 궁극적으로는 영화자체가 되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레퍼런스급의 화질과 음질을 가지고서 현재의 DVD로선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서플들을 수록하게 된다면 이론상으로는 극장에서의 영화관련결과와는 전혀 다르게 이 가상의 영화의 DVD흥행은 전혀 다르게 흘러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면 DVD를 통한 영화체험은 영화관을 통한 영화체험과는 다른길을 걷게되는 것일겁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DVD의 판매수량은 해당영화의 흥행수준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극장에서의 관객몰이에 성공한 영화인 엽녀는 국내영화중 현재까지출시된 타이틀중에선 가장 뛰어난 스펙으로 출시가 되었습니다. 엽녀 DVD가 영화계와는 달리 여전히 해외영화 타이틀이 휩쓸고 있는 DVD계에 한국영화의 자존심을 세워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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