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 시인 회갑 기념 묵란전 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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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蘭) 치기는 와장창 깨지고 부서지는 이 혼돈의 세상에서 나름의 질서찾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 중에서 편안하게 몰두할 수 있는 작업이라 애착이 갑니다."

시인 김지하씨가 11~26일 서울 관훈동 학고재(02-739-4937) 에서 '미의 여정, 김지하의 묵란전'을 연다. 그를 따르는 후배들이 회갑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한 전시회다.

지난 20여년간 그려온 수천점의 난초 중 서울대 미학과 후배인 유홍준 영남대 교수와 우찬규 학고재 대표가 골라낸 70여점을 전시한다. 매화 한점과 달마도 두점도 들어 있다.

그가 난초를 치기 시작한 것은 1980년 군부독재 치하에서 옥고를 치른 뒤 요양차 강원도 원주에 머무를 때부터다. 스승은 생명운동가인 무위당 장일순(1928~94) 선생.

"교도소 독방에 오래 있다 나오면 꼭 어디서 나를 부르는 것 같아 괜히 분주해지게 마련입니다. 저도 환청 같은 걸 여러번 들었지요. 선생은 '함부로 나서서는 안돼. 마구잡이로는 안된다'며 난 치기를 권하시더군요. 엉덩이를 오래 붙이고 있어야 하니 저절로 수양이 된다는 거였죠. 소인들이 날뛰는 세상에서 부딪히지도 말고 게으르지도 말라는 얘기셨어요."

무위당이 잎이 짧은 난을 즐긴 데 비해 金씨는 길게 뻗치는 장엽(長葉) 에 빠졌다.

"난초 잎의 길이는 한(恨) 의 길이와 같지요. 내 안에서 솟구쳐 흐르는 한이 그만큼 길었다는 뜻이겠지요."

金씨는 "바람에 흩날리는 표연란(飄然蘭) 이 좋습니다. 흔들림 속에서 난초의 고결한 성품을 잡아내는 것, 그건 제 인생의 좌표였습니다"라고 말했다.

요즘엔 날카로운 잎에서 벗어나 부드럽고 짧은 잎의 묵란을 즐겨그린다. 삶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난초를 처음 치기 시작할 무렵엔 뜻은 저만치 가있는데 붓이 따라가지 못했습니다.의욕이 앞섰지요. 그런데 요즘은 거꾸로입니다. 여유라면 여유지만, 늙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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