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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 넘어설 새 대북정책 짜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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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북핵 실험 3시간 만인 12일 오후 3시 청와대에서 만나 정권이양기에 흔들림 없는 대북정책을 견지하기로 했다. 이 대통령과 박 당선인이 단독회담을 위해 백악실로 이동하고 있다. 뒤쪽은 유일호 당선인 비서실장. [청와대사진기자단]
김영희 대기자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한반도 안보전략의 프레임이 흔들린다. 더 정확히는 비핵화 정책에 조종(弔鐘)이 울렸다. 북한핵 폐기를 전제로 한 대북정책은 어제로서 설 땅을 잃었다.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출발도 하기 전에 좌초했다.

 북한이 핵무장의 마지막 한 단계를 포기하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북한의 계산은 이렇다 . 일단 핵탄두와 장거리 미사일을 실전배치 가능한 수준까지 끌어올린다. 그것은 미국의 위협에 대한 유일한 억제수단이 된다. 미국은 어떤 경우에도 핵을 가진 북한을 공격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북한은 핵무기가 보장하는 , 대등한 입장에서 미국과 대화를 시도할 것이다. 김정은은 앞으로 더욱 굶주리게 될 북한 인민들에게는 북한이 핵 보유라는 위업을 달성했다고 선전해 체제 안정을 더욱 굳힐 수 있다. 중국의 분노도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북한은 믿는다. 2006년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한 뒤에 조지 W 부시 미국 정부는 북한을 테러지원국가 명단에서 삭제해 주지 않았던가.

 국제사회가 북한에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는 이미 예고됐다. 유엔 안보리는 강력한 제재조치를 다시 결의할 것이다. 그것은 이미 실시 중인 제재의 폭을 최대한 넓히는 것이다. 더 많은 북한 인사의 국제적인 접촉을 제한하고, 국제금융기관들이 북한과 거래하는 것을 중단시킬 것이다. 그러나 제재는 사후조치일 뿐이다. 이미 북한은 핵탄두의 경량화·소형화를 목적으로 한 핵실험을 해버렸으니 그걸 무(無)로 돌릴 수는 없다. 북한은 국제제재와 고립에 이골이 났다. 거기다 중국의 협조가 만족스러울지는 불확실하다. 북한은 중국에 수백 개의 작은 금융거래 창구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그 틈새(loophole)들을 막지 않는 한 북한은 최소한의 숨쉴 구멍을 갖는다.

 박근혜 정부가 떠안은 최대 과제는 북한 핵무장에 대한 한·미 간 인식의 갭을 메우는 것이다. 공식적으로 한·미 공조는 탄탄하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장이 실질적인 위협이냐 아니냐에서 두 나라의 견해차는 너무 크다. 한국에 북한핵은 직접적인 위협이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가진들 실제로 그걸 사용하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북한이 핵무기로 한국·미국·일본을 도발하는 것은 자살행위라고.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는 핵을 가진 북한에는 수많은 도발의 선택지가 열려 있다. 미국과의 대화에서는 대등한 입장, 한국·일본과의 대화에서는 핵보유국으로서 우위에 선다. 모든 한반도 평화·안보 관련 대화의 패턴이 뿌리부터 바뀐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남북한 간 핵 비대칭 상황이 생기더라도 남한이 충분한 억지력(deterrence)을 확보하는 건 기본이다. 전술핵 미사일의 재배치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미국에는 이제 한국에 재배치할 전술핵 미사일 같은 건 없다. 2015년 전시작전권을 넘겨받은 이후에도 한·미 방위협력체제가 약화되지 않도록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고 특히 군사정보의 공유를 확실히 해두는 것도 기본이다. 북한 전역에 미치는 미사일 배치가 중요하다. 일본과의 관계를 복원해 작년에 서명하려다 실패한 군사정보 교류협정을 체결, 우리보다 앞선 일본의 북한 관련 군사정보를 제공받아야 한다.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만큼 절실한 것이 중국의 협력이다. 한·미 협력은 우리 안보의 필요조건이지만 이제는 충분조건은 아니다. 중국이 북한을 배후에서 눌러주지 않는 한 우리의 전방위 방어체제는 구멍이 있다. 박근혜 정부는 중국의 협조 확보에 올인해야 한다.

 북한의 3차 핵실험은 충격이다. 그러나 내일은 내일의 바람이 분다. 3개월, 6개월이 지나면 우리는 북한과 대화하는 미국을 목격할 것이다. 재개되는 북·미대화에서는 북한의 추가 핵무기 개발 중단과 핵확산 금지에 초점을 둘 것이다. 이것은 북핵을 용납하지 않는 한국의 입장과 정면충돌한다. 우리 자신의 대북정책을 다시 짜야 한다. 다시 짜는 대북정책은 어쩔 수 없이 북한의 핵 보유를 전제로 하는 것이어야 현실적일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과 미국의 대북정책은 비핵화에만 매달린 결과 북한 핵무장도 못 막고 대화의 단절만 초래했다. 북한의 핵 보유는 기정사실로 굳어진다. 그래서 우리의 새 대북정책은 비핵화보다 훨씬 큰 틀에서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시야에 둔 정책이어야 한다. 한반도와 동북아 전체의 문제라는 분모를 키워 북핵이라는 분자를 최소화하는 현실적인 정책이 급하다.

김영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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