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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교서 전날 강행, 대미 협상력 극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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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한 조선중앙TV는 핵실험 강행 직후인 12일 낮 예고에 없던 방송을 시작했다. ‘조선은 결심하면 한다’라는 노래를 먼저 틀었다. 백두산과 눈 덮인 벌판을 질주하는 탱크부대를 배경화면으로 깔았다. 국제사회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제 갈 길을 가겠다는 메시지를 외부로 던진 것으로 해석됐다.

 이번 3차 핵실험은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택일에 상당히 고심한 흔적이 느껴진다는 게 정부 당국자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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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이 핵 버튼을 누른 시점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연두교서(State of the Union) 발표 하루 전이다. ‘핵 없는 세상’을 주창해온 오바마를 궁지에 빠뜨리려 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베이징의 중국 지도부가 지난 10일부터 일주일간 춘절(중국 설) 연휴에 들어간 때란 점도 눈길을 끈다. 대내적으론 2011년 12월 사망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2월 16일)을 앞두고 핵 유훈 실천을 부각하려는 의도도 감지된다.

 복합적인 여러 이유 가운데서도 김정은이 가장 의식한 건 미국이라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유호열(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한국정치학회장은 “김정은은 고강도 벼랑 끝 전술로 가는 게 미국과의 협상에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의 대화를 통해 정전협정 60주년인 올해 평화협정 체결 쪽으로 정세를 몰아가려 도발적 행태를 보였다는 얘기다. 2주 뒤 출범할 박근혜 정부에 메시지를 보낸 것이란 해석도 있다. 박 당선인에게 로켓에 이어 핵 도발 카드까지 내밀며 자신이 결코 녹록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진핑(習近平) 체제의 중국 지도부와 각을 세우고 나선 점도 주목거리다. 북한 국방위는 중국이 대북제재에 동참하자 지난달 24일 “큰 나라들까지 제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김정은은 기만전술까지 써가며 핵실험의 극적 효과를 높이려 했다. 그는 11일 열린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도 핵실험에는 아무 언급을 하지 않았다. 두 달 전 로켓 발사 때처럼 풍계리 핵실험장 갱도 입구에도 위장막을 덮었다 걷는 등의 행동으로 한·미 정보당국의 판단에 혼선을 주려 했다. 한편으론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를 통해 지난 6일 “남북대화 재개 여부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 달려 있다”며 간접적인 방식으로 대화를 제의하거나 “(지난달 26일 밝힌) 국가 중대조치가 3차 핵실험이라고 지레 짐작하며 설레발을 친다”(8일, 통일신보)면서 연막을 피웠다. 당국자는 “북한이 축구 에서 골대를 옮기는 것과 같은 행동으로 국제사회의 대북압박 전열을 흩뜨리려 했다”고 비유했다.

 북한은 2009년에는 2차 핵실험을 예고한 지 26일 만에 핵실험을 강행했었다.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불상사로 서거하였다는 소식에 접하여 권양숙 여사와 유가족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라는 내용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보낸 조전(弔電)을 소개하곤 4시간 뒤 바로 핵실험을 강행했었다. 정부도 북한이 핵실험을 예고한 지 20일째로 접어드는 이번 주를 핵실험의 고비로 여겨왔던 터였다. 결국 북한은 지난달 24일 “미국을 겨냥한 높은 수준의 핵실험을 진행할 것”이라고 위협한 지 19일 만에 버튼을 눌렀다.

 국정원은 이날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통치권자일 때는 나름대로 일관성이 있었는데, 김정은은 그런 것이 잘 보이지 않는다”며 “ 김정일 체제가 지금보다는 안정적이었다”고 보고했다고 여야 정보위원들이 전했다.

 정부 당국은 북한이 3곳의 갱도 가운데 2호(서쪽) 갱도에서 핵실험을 실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도 이날 국회 국방위에 출석해 “현재는 서쪽 갱도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영종·정용수 기자

◆ 4.9= 3차 핵실험 직후 함경북도 길주군 인근(북위 41.24도, 동경 129.51도)에서 포착된 인공지진의 규모. 2006년 1차 핵실험(3.9)과 2009년 2차 핵실험(4.5) 때보다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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