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북한 위협을 다루는 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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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발 사진 한 장이 전 세계에 보도된 적이 있었다. 한 상점의 유리창에 붙어 있던 "미국인은 사절합니다"라고 적혀 있는 안내문이었다. 이 사진은 참으로 희한했다. 미국인이 공적 1호라니 말이다.

물론 우리는 이 안내문이 최근 미군 무한궤도 차량에 의해 한국 여중생 두 명이 희생당한 사건과 관계가 있음을 알고 있다.사실 한국에서의 반미주의는 상당히 넓게 퍼져 있고 뿌리도 깊다. 반미주의가 여학생들의 비극적인 사망사건에 의해 발생한 것은 아니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인들의 반미주의는 설명하기 쉽다. 미국의 전략적인 보호나 거대한 미국 시장, 지구촌을 휩쓰는 미국 문화 등 '빅 브라더'인 미국에 의존하는 상황은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다. 사람들은 종속돼 있다는 현실에 분노를 느낀다.

*** 달래기로 안통하는 平壤

그러나 좀더 들어가 보면 한국인의 반미주의에는 심리학 용어로 '치환(displacement)'이라고 부르는 상황이 포함돼 있다.치환이란 진짜 범인인 당사자에게는 화를 내지 못하고 덜 위험스러운 다른 대상에게 분노를 표현하는 심리를 뜻한다.

한국이 지금 직면한 진짜 위협은 전에도 그랬지만 그동안 햇볕정책을 통해 수년 동안이나 여러 방식으로 달래 보려고 해온 북한의 김정일(金正日)정권이다. 잠재의식적으로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가 과격한 미국이 평양에 압력을 가하거나 자극하는 것을 막는다면 북한의 위협은 사라질지도 모른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심리학적인 관점을 벗어나 차분하게 전략적으로 생각해 보자. 이렇게 접근하면 위협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서울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인질로 삼으려는 평양의 정부를 상대하려면 달래기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우선 달래기 방식은 과거에 효과를 보지 못했다.

1994년 북.미 핵합의가 이뤄졌지만 평양은 대량살상무기를 계속 만들어 왔다. 최근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한 첫 번째 국가가 됐다.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요원들도 추방시켰으며 원자로도 재가동하려 하고 있다.

둘째로 김정일 정권은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무분별하지는(crazy)' 않다. 사실 북한은 정말로 이성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나는 미친 짓을 할 수도 있다. 남한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수도 있다. 보상을 해주지 않는다면 말이다"라며 냉철하게 계산된 협박 전략을 계속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불행히도 협박범들은 결코 협박을 중단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쓰디쓴 경험으로 알고 있다. 매번 양보하고 매번 보상해줄 때마다 협박범들의 식욕은 더 늘어간다. 일단 상대방이 두려움에 굴복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 얼마까지나 얻어낼 수 있을지를 보려고 요구 수준을 더 올린다.

이는 왜 '치환'이 잘못된 전략인지를 보여준다. 한국의 문제는 미국이 아니라 북한이다. 김정일의 손에 핵무기를 쥐어주지 않으려는 것은 미국의 이익과 동시에 한국의 이익을 위해서다.

일단 북한이 핵무기를 확보하면 북한은 남한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위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전략은 무엇인가? 이는 북한의 인접국인 중국.러시아.일본만이 아니라 미국과도 협조하는 것이다. 이들 중 어느 누구도 북한이 핵무기를 갖기를 원하지 않는다.

*** 주변국 외교 연대 강화를

이 전략은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과는 다른 '사고방식'을 가져야 함을 뜻한다. 서울의 새 정부는 마치 방관자처럼 행동하고 있다. 새 정부는 북한의 위협을 인정하는 대신 이 문제를 워싱턴과 평양 사이의 갈등인 것처럼 치부하면서 중립적인 중재자로 행동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러나 1950년 북한이 남한을 침범해 왔을 때처럼 북한의 핵무기는 가장 우선적으로 한국의 문제다. 이 때문에 한국은 협박은 결코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줄 베이징(北京).도쿄(東京).모스크바.워싱턴과 외교적 연대 관계를 형성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김정일은 결코 '미치지' 않았으며, 현실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햇볕'은 비나 천둥보다는 더 낫다. 하지만 자명한 사실은 단지 햇볕만을 바라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하늘을 시커멓게 만들겠다고 위협하는 이들은 상대방이 폭풍을 뚫고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준비돼 있음을 알아야만 한다. 협박의 본질은 일단 성공하면 또 다른 협박을 만든다는 것이다.

요제프 요페 독일 디차이트지 편집인
정리=채병건 기자

◇약력=독일 뮌헨대 교수, 미국 스탠퍼드대.하버드대.프린스턴대.존스홉킨스 국제문제연구소 객원교수 등 역임, 현재 미 시사주간지 타임 편집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