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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서 사과를 키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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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기후변화에 따른 먹거리 대이동은 예상치 못한 경제적 파급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원산지 못지않은 최적의 조건에서 키워지는 데다 생산자의 부가가치 창출 노력이 결합되기 때문이다.

 산지가 바뀐 먹거리들은 예외 없이 품질 향상으로 이어졌다. 위도와 고도가 높고 일교차가 큰 지역을 찾아내 키운 사과와 한라봉은 더 달콤해지고 과육이 단단해졌다. 눈 덮인 동해안을 찾은 굴비는 육질이 쫀득해졌고 파도 높은 동해안 넓은 바다에서 자란 전복은 자연산에 더 가까워졌다. 이상기후를 피해 새로운 산지를 찾는 데 그치지 않고 이상기후를 극복하고 오히려 이를 이용해 더 나은 품질의 먹거리를 만들려는 생산자들의 노력 덕분이다.

 자연재해로 인한 리스크도 분산됐다. 태풍이나 폭설·가뭄 등이 주산지를 덮치고 나면 필연적으로 ‘전복 대란’ ‘사과 파동’이 찾아오곤 했지만 이제 여러 지역으로 산지가 분산되면서 발생률이 낮아지게 됐다. 애초에 ‘구룡포 전복’의 경우 숱한 태풍 피해 이후 완도 전복을 대신할 것을 찾으려는 노력에서 등장하게 된 것이다.

 또 평소에도 산지 한 곳이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물량이 공급되기 때문에 가격 안정 효과도 크다. ‘육지 한라봉’처럼 새로운 산지가 개발되면 기존 제품보다 부대비용이 떨어지기도 한다. 신경환 롯데마트 바이어는 “육지 한라봉의 경우 차로 유통되기 때문에 배나 비행기로 날라야 하는 제주 한라봉보다 물류비가 덜 든다”고 말했다.

 생산지 이동을 통해 상품에 부가가치를 더하기도 한다. 김효식 갤러리아 바이어는 “기존 산지를 벗어난 상품은 그 사실 자체가 ‘스토리텔링’이 되기 때문에 더 상품성이 있다”고 했다.

 새 산지 개발은 해당 지역의 경제도 활성화한다. 황태덕장으로 유명한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는 최근 중국산 마른 명태 수입이 급증하고 생산지를 속여 판매하는 경우가 많아 어려움을 겪고 있던 중 굴비 생산지로 전환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강원도 양구의 경우 대형마트 등 판매처가 생기자 사과를 키우는 농가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새 산지의 개척은 유통업계로서도 미래의 주산지를 확보한다는 의미가 있다. 황영환 현대백화점 바이어는 “5~10년 뒤의 기후변화에 미리 대응하기 위해 사과·배 등 주요 과일 재배지를 다양하게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먹거리 대이동에 밝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농촌진흥청 온난화대응농업연구센터 김성철 박사는 “재배지가 이동한다는 것은 기존 산지의 재배 환경이 나빠진다는 것”이라며 “새로운 환경에 재배기술과 토양 등을 새롭게 맞추기 위해서는 엄청난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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