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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의 교차로, 우리가 몰랐던 서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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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신장의 역사
제임스 A 밀워드 지음
김찬영·이광태 옮김
사계절, 624쪽, 3만8000원

중국 최대 행정구역은 신장(新疆) 위구르 자치구다. 중국 영토의 6분의 1이다. 프랑스와 독일을 합친 것보다 크다. 신장에 대한 문헌은 많지 않다. 그 간격을 메우는 게 최초의 신장 통사(通史)인 『신장의 역사』다. 서역(西域), ‘중국령 투르키스탄’이라고도 불리는 신장의 역사에 관한 한 세계적으로 경쟁자가 없는 독보적인 책이다.

 『신장의 역사』는 역사 지식의 ‘편식’을 꺼리는 독자들을 위한 뷔페 같은 책이다. 저자는 ‘사회간사학(社會間史學·Intersocietal History)’ 교수라는 아마도 세계 유일의 타이틀을 지닌 미국 조지타운대 제임스 A 밀워드 교수다.

 그에게 역사란 사회와 사회가 만났을 때 발생하는 그 무엇이다. 하버드대(학사)·런던대(석사)·스탠퍼드대(박사)에서 학문적 훈련을 받은 밀워드 교수는 오늘의 신장을 만든 정치·경제·지리·환경·인구·문화·언어·종교와 같은 다양한 변수를 솜씨 있게 다룬다.

 밀워드가 염두에 둔 독자층은 “학생, 여행자, 저널리스트, 정치가 및 정책 입안자를 비롯한 일반독자”로 구성된다. 다양한 독자층을 만족시키는 데 최대의 난제는 아마도 신장에 등장한 복잡하고 다양한 행위자(actor)들이었을 것이다.

중국 신장 지역은 동서문명이 섞이는 요충지였다. 그만큼 격변이 많았다. 1933~34년과 1944~49년 신장의 일부 지역에서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이 선포됐다. 사진은 첫 번째 공화국의 군인들을 찍은 것이다. [사진 사계절]

 책의 부제인 ‘유라시아의 교차로’가 암시하듯 사카족·월지·흉노·한족·소그드·몽골·위구르·만주족 같은 다양한 집단이 머물기도 하고 거쳐가기도 했다. 신장은 또한 소승·대승 불교,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샤머니즘,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이슬람의 이동 통로 구실을 한 비단길의 허브였다.

 이 책이 미국에서 주목 받게 된 계기는 2009년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구도(區都)인 우루무치(烏魯木齊)에서 발생한 유혈사태다. 192명 사망이 하고 1000명이 부상했다. 신장에 대한 중국의 정책이 일종의 다문화주의에서 단일민족주의로, 문화공존에서 동화정책으로 옮아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태다. 1990년대 이후의 경제개발 정책이 이룩한 성과가 한족과 위구르인 사이에 골고루 돌아가지 못한 것도 참극의 배경이다.

 밀워드 교수는 흥미로운 점을 지적한다. 중국은 2001년 미국에서 발생한 9·11테러 이후, 신장 분리주의가 ‘약하다’는 입장에서 ‘강하다’는 쪽으로 선회했다. 테러, 종교적 극단주의와 싸우는 미국의 전 세계적 싸움에 중국이 ‘동참’한 것이다. 그렇게 보면 중국 자신이 신장 분리주의의 배양에 일조했다.

 미국 학계는 『신장의 역사』의 서술이 공정하다고 평가한다. 위구르 분리주의 대(對) ‘신장은 고래로 중국 땅’이라는 시각 사이에서 중립을 지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 때문은 아니지만, 밀워드 교수는 중국 당국의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다. 그만큼 중국은 민감하다. 미국이 신장을 중국의 분열을 유도하는 수단으로 삼으려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신장의 역사』의 이번 번역은 신장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마련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신장과 중국, 우리와 중국 사이의 역사에서는 닮은꼴이 발견된다. 기원전 108년 고조선을 멸망시킨 한나라는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했다. 한나라가 신장에 도호부를 설치한 것도 비슷한 시기인 기원전 120년이다.

 밀워드 교수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과 신장의 관계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깊다”고 말했다. 그는 책의 말미에서 ‘이익의 균형(balancing of interests)’을 위한 줄타기를 얼마나 잘하느냐에 신장의 미래가 걸려 있다는 것을 암시했다. 우리에게도 적용할 만한 이야기다.

김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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