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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외국 인재들, 이것 못견디고 회사 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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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삼성전자를 제외한 삼성 계열사 직원들 사이에선 요즘 “삼성은 ‘삼성전자’와 ‘삼성후자(비삼성전자 계열과 신사업)’로 나뉜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돈다.

 간판 기업인 삼성전자의 휴대전화와 TV·반도체 등에서 경이로운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전자를 제외한 대다수 계열사는 성장이 멈칫하며 뒤편에 가려 있는 상황을 빗대서다.

 실제 삼성전자가 지난해 201조원의 매출을 올리면서 그룹 내 비중은 사상 최대치인 65%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가운데 3년 전부터 2020년까지 23조원을 투입하기로 한 5대 미래 신수종(新樹種) 사업마저 궤도에 오르지 못해 어느 때보다 위기감이 팽배하다. 지난달 11일 이후 해외에 체류 중인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이 회장은 틈만 나면 위기 상황을 강조하며 10년 이상 먹을거리를 강조해 왔다.

 삼성의 신수종 사업은 다른 주요 그룹과도 적잖게 겹쳐 있다. 표학길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내 기업들의 신사업 정책은 엔저를 무기로 부활하는 ‘일본 주식회사’, 첨단 기술로 바짝 뒤쫓는 중국, 그리고 대내외적인 불확실성 속에서 정확한 방향을 못 잡고 표류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진 못하는 5대 신수종

삼성은 2020년까지 발광다이오드(LED)에 총 8조6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하고 삼성LED를 2011년 말 삼성전자 내 사업부로 끌어들였다. 하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편입 직후 LED가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는 바람에 국내 시장을 포기해야 할 판이다. 바이오시밀러(단백질 복제약) 부문도 제동이 걸렸다. 삼성은 지난해 말 해외에서 진행해온 바이오시밀러 ‘SAIT 101’의 임상시험을 돌연 중단했다. 스위스의 다국적 제약사 로슈가 연간 70억 달러(약 7조7000억원)씩 파는 비호지킨림프종 치료제 ‘리툭산’의 복제약이다.

 이런 가운데 서울대 의대 교수를 지내고 가천대 이길여 암·당뇨연구원장으로 일하던 박상철 교수가 지난달 삼성종합기술원 노화연구센터장(부사장급)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룹 안팎에선 바이오시밀러 대신 노화 관련 신약 개발로 방향을 튼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태양광 사업 또한 지지부진한 상태다. 각국의 정부 지원이 줄어든 데다 중국 업체들이 밀려들면서 만성 공급과잉 상태에 빠져 있다. 자동차용 2차전지의 경우 독일 BMW와 미국 델파이 등과 납품 계약을 했으나 이후 시장을 확장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의료기기 부문에선 지난달 29일 미국의 컴퓨터단층촬영(CT) 의료기기업체 뉴로로지카를 인수하는 등 활기를 띠고 있다. 그러나 아직 글로벌 무대에선 고가 의료기기 시장 진입에 어려움을 겪는 중이다.

 ◆‘제조업 마인드’ 못 견디는 해외 인력

이 회장은 2011년 사장단에 “소프트웨어·디자인·서비스 등 소프트 기술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후 삼성은 소프트 직군을 신설하고 3만2000여 명의 소프트파워 인력을 구축했다. 하지만 정작 외국의 연구조직에서 유능한 소프트웨어 인력들이 속속 이탈하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계속되는 야근과 업무 압박, 상명하복 등 국내 기업 특유의 ‘쪼임’ 문화에 견디지 못한 외국인 개발자들이 삼성을 떠나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해외주재원 A씨는 “현지 채용된 인력들이 가장 쉽게 알아듣는 한국어가 ‘까’(‘까라면 까’의 줄임말)”라며 “과정과 관계를 중시하는 외국 인재들이 성과 위주의 문화적 이질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1년도 안 돼 회사를 떠나고 있다”고 말했다.

 ◆마누라 빼고 다시 모두 바꿔야

안현호 무역협회 부회장은 최근 한 강연에서 “중국 업체들이 빠르게 치고 올라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휴대전화와 TV, 냉장고 등 전자부문에서 1위를 유지할 시간은 채 10년도 안 남았다”고 경고했다. 과거 세계 선두에 올랐던 일본과 비슷한 추세를 밟고 있다는 근거에서다.

 시장조사기관 IDC는 3년 후 전 세계에서 팔리는 스마트폰 10대 중 6대가 중국산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장기적인 측면에서 먹을거리를 확보한 사람의 기여도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협업을 통한 시너지, 신사업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고 동기부여가 된다”고 말했다.

심재우·박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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