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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뚜라미 소리 듣고 기발한 발명품 만든 여고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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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6일 삼성전자 권오현 부회장(왼쪽)이 휴먼테크 논문대상 금상 수상자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귀뚜라미는 양 날개를 비벼서 아름다운 소리를 내더군요. 이 원리를 응용하면 독창적인 악기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연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인천과학고 1학년 이은성(17)양은 6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서 열린 제19회 휴먼테크 논문대상 시상식에서 금상을 받은 10편의 논문 저자 가운데 가장 어리다. 논문 제목은 ‘귀뚜라미 날개 패턴을 이용한 악기의 공학적 설계’. 연구는 지난해 초 우연히 본 귀뚜라미 영상이 계기가 됐다. 귀뚜라미는 싸우거나 유인할 때, 구애할 때 양쪽 앞날개를 비벼 다양한 소리를 낸다. 이양은 “앞날개 오른쪽은 빨래판 구조, 왼쪽에는 빨래판을 긁는 마찰편이 있다”며 “이 방식을 적용해 쇠막대와 톱니의 홈이 맞물린 악기 제작에 착안했다”고 설명했다.

이은성

 이양은 논문만 제출한 게 아니라 직접 악기를 만들었다. 건반은 멜로디언을 분해해 활용했다. 건반을 누르면 톱니가 돌아가고, 그만큼 밀려났던 쇠막대가 돌아오며 톱니를 쳐서 소리를 내는 방식이다. 연구기간 8개월 가운데 악기 제작에만 석 달 가까이 걸렸다. 도안만 11차례 바꿨다. 이양은 “시험기간을 빼면 온통 악기 제작에만 매달렸다”고 말했다. 마지막 관문인 정확한 음을 구현할 때는 음정을 맞춰주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했다. 마침내 완성된 악기의 음색은 아프리카 전통악기 칼림바를 닮았다는 평가를 들었다. 이양은 과학도이면서 경영 쪽에 관심이 많다. 산업공학을 공부한 뒤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되는 게 꿈이다.

 대학분과에서 금상을 받은 포스텍 박사과정 김용진(30)씨는 포토샵으로 3차원(3D) 입체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개발했다. 논문 제목은 ‘스테레오 입체 페인팅’. 김씨는 “눈에 보이는 형상이 있으면 쉽게 입체영상으로 만들어 낼 수 있지만 구체적인 물체가 없을 때는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를 고민하다 연구를 시작했다. 김씨는 1년7개월 만에 ‘입체 페인팅’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3D 영화의 경우 점토로 사람이나 건물 등을 만들고 이를 앞뒤로 놓고 원근법을 살려 영상을 만들지만 김씨의 소프트웨어(SW)로는 생각 속의 장면을 입체적인 그림으로 구현할 수 있다. 김씨는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도록 포토샵 기능과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었다. 이 SW는 심사위원들로부터 “창의성이 뛰어나고 실용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씨는 “연구에 몰두하느라 졸업이 1년 가까이 늦어졌지만 이번 수상으로 더 큰 보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학교에 주는 특별상은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과가 2관왕을 차지했다. 최다 수상 학과와 최다 제출 학과에 동시에 뽑혔기 때문이다. 고교에서는 경기과학고가 최다 수상 학교, 세종·경기·한성과학고가 최다 제출 학교로 특별상을 받았다.

 시상식은 6일 오전 서울 삼성 서초사옥에서 열렸다. 수상 논문 122편에 모두 6억원 규모 상금이 수여됐다. 행사에는 송필호 중앙일보 부회장,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이상훈·김재권 삼성전자 사장, 수상자, 가족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권 부회장은 인사말에서 “창의와 도전은 젊은 과학도의 특권”이라며 “세상을 바꾸는 논문으로 노벨상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도록 끊임없이 도전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현구 심사위원장(대통령실 과학기술특보)은 764명의 심사위원을 대표해 “접수된 논문 중 여러 편이 세계 유명 학회지에 수록이 허락돼 있을 정도로 올해 수준이 매우 높다”며 “수상자의 저변과 연구 분야가 넓어진 것도 고무적”이라고 치하했다.

박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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