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쇠고기 협상 같은 통상, 경제부처가 맡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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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5일 외교통상부의 통상 업무를 신설되는 산업통상자원부로 옮기는 것과 관련해 “(국회) 외통위에 있어 보니 통상 기능이 외교부에 있는 건 좀 아귀가 안 맞는다”고 말했다. 이어 “쇠고기 협상 같이 통상에 관계되는 문제는 경제나 무역을 담당하는 전문 부처에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경북지역 새누리당 의원들과의 오찬에서다. 박 당선인은 외교-통상 분리는 “오랜 국회 경험에서 우러나온 생각”이라며 이같이 밝혔다고 복수의 참석자가 전했다.

 그러면서 박 당선인은 “외교부에서 통상 기능을 반드시 그쪽(자기쪽)으로 넣어달라고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며 “통상은 협상만 중요한 게 아니라 나중에 일을 처리하는 것도 중요한데 경제 문제를 외교부가 계속 맡는 것은 맞지 않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고 한다.

 전날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헌법과 정부조직법의 골간을 흔들 수 있다”면서 반기를 든 데 대해 조목조목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박 당선인은 또 “통상교섭본부장이란 게 차관도 아니고 장관도 아니고 어중간한 위치다. 통상 교섭을 산업통상자원부로 이관하면 장관이 직접 (통상교섭에)나서게 되지 않느냐”며 “다른 나라는 장관이 나오는데 우리는 본부장이 나오면 격에도 안 맞고 손해도 많다”는 발언도 했다고 한다. 한 참석 의원은 “이명박 정부라는 언급은 없었지만 박 당선인이 쇠고기 협상이 문제가 된 것도 통상 기능이 외교부에 있다 보니 생겼다고 생각하는 듯했다”고 말했다.

 외교통상부는 하루 만에 대응 수위를 낮췄다. 현직 장관이 대통령 당선인의 조직개편안에 반발하는 것으로 비춰진 걸 의식해서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장관이) 통상 기능 이관 자체가 헌법과 관련된다는 발언을 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장관의 발언 취지는 통상 기능을 외교부에서 다른 부처로 이관하더라도 정부 대표 임명 권한은 외교부가 계속 행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내용”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장관도 부처 이기주의 차원에서 말한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조태영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오후 “조직보다 정부가 우선이다. 조직개편 내용이 확정되면 외교부는 당연히 그에 따라야 된다”고 말했다.

 전날 김 장관의 발언에 부글부글 끓었던 인수위도 일단 관망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5일 오전 인수위 국정기획조정분과 위원인 강석훈 의원도 기자들에게 “국민만을 바라보고 새롭게 정부를 출범시켜야 할 시기에 부처 이기주의나 부처의 논리에 갇혀 있는 경우가 있다면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김 장관을 비판했다.

 외교부의 해명 후 김 장관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강 의원을 찾아가 전날 발언에 대해 직접 해명을 하면서 논란을 확대시키지 말자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인수위 관계자는 “발언 당시만 해도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느냐는 분위기가 팽배했다”며 “그러나 더 이상의 논란은 자제하자는 기류가 우세하다”고 전했다.

외교부뿐 아니라 여당 의원들까지 외교통상부문 분리에 반대하자 서병수 새누리당 사무총장은 집안단속에 나섰다. 서 총장은 “ 정부 조직개편안은 박 당선인이 15년 동안 의회 활동을 하면서 쌓아왔던 경험과 정치적 가치, 국정운영 철학이 담겨 있는 것”이라며 “개인적인 의견이 있어도 조금씩 양보하고 원래 취지대로 통과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조현숙·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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