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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타인데이, 봉사하며 데이트하는 ‘볼런티어데이’는 어떠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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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유중근 총재는 ?젊은이들이 적십자사를 통해 쉽고 재미있게 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했다. 딱딱한 이미지를 벗고 싶다는 얘기다. [안성식 기자]

“올해는 밸런타인데이 대신 볼런티어(volunteer)데이 어떨까요.”

 지난 1일 서울 중구 남산동 사무실에서 만난 대한적십자사 유중근(68) 총재는 “오는 14일 밸런타인데이를 젊은 연인들의 자원봉사(볼런티어)데이로 ‘격상’시키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고 귀뜸했다. 볼런티어데이 프로그램은 적십자사가 운영하는 전국 13개 ‘희망나눔봉사센터’에서 연인들이 빵을 굽고 이를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하는 행사다.

“초콜릿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날, 데이트하면서 봉사하는 기쁨까지 느낀다면 그 사랑은 더 의미있지 않을까요.”

 나직하게 볼런티어데이를 설명하던 그는 “사실은 한 젊은 친구의 아이디어였는데 제가 빌렸어요. 물론 그 친구의 양해를 받고요”라며 활짝 웃었다.

 그는 대한적십자사 108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재다. 그래서일까. 무겁고 딱딱한 이미지이던 적십자사가 한결 활기차고 부드러워졌다는 평가다. 지난해 종무식은 전 임직원들의 헌혈로 대신했고, 올 시무식엔 유 총재와 직원들이 서울역으로 가 노숙인들에게 떡국과 목도리를 나눠줬다.

그의 모토는 ‘국민 속으로 들어가는 적십자사’다. 지난해 시작한 ‘희망풍차’ 프로젝트가 그 일환이다.

 “이번 볼런티어데이 행사를 계기로 전국 50개 희망나눔센터를 젊은이들의 봉사와 나눔의 장으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입니다.” 유 총재는 희망나눔센터의 원래 이름 ‘적십자봉사관’을 ‘희망나눔센터’로 바꾸고 현판 디자인도 친근하게 바꿨다. 26개 센터에 빵을 구울 수 있는 빵 나눔터를, 18개 센터에는 국수를 만들 수 있는 국수 나눔터를 설치했다.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죠. 앞으로는 젊은이들과 국회의원들이 함께하는 공간, 초등학생들이 학급별로 봉사할 수 있는 공간으로도 활용할 계획이에요.”

 그는 여성 총재의 강점으로 ‘조직 안의 벽을 허물고 통합을 이끌어 내는 능력’을 꼽았다. 1998년 여성봉사특별자문위원으로 적십자사와 인연을 맺은 후 부총재를 거쳐 총재가 되기 전부터 그는 각종 모임이나 단체의 리더로 활동했다. 이화여대 영문학과 재학시절 총학생회장을 지냈고 메이퀸에 뽑히기도 했다. 총학생회장, 메이퀸, 수석졸업 세 가지 ‘업적’으로 그는 동문들 사이에 이화여대 ‘3관왕’으로 불린다. 1984년부터는 경원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저소득층 학생을 위한 장학금 지원도 해오고 있다.

 “사랑과 봉사라는 적십자 정신을 정말 좋아합니다. 나눔과 봉사는 남을 위한 게 아니라 나 자신의 성숙을 돕는 삶의 활력소거든요.” 그는 적십자의 역할을 ‘소금 같은 존재’라고 했다. “소금이 스스로 녹아 없어져서 음식의 맛을 내듯이 적십자는 사랑과 봉사로 나눔 문화의 맛을 낸다”는 것이다.

 -‘희망풍차’ 프로젝트의 대상은 누구인지요.

 “풍차의 네 날개는 국내 4대 취약계층인 저소득층 아동, 노인, 북한 이주민(탈북자), 다문화 가족을 상징합니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약자죠. 이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게 희망풍차의 목적입니다. 자원봉사자 2명과 이 계층에 속하는 1개 가정을 연결해 필요한 물품과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현재 2만여 가구를 대상으로 지원하고 있고 올해 안에 그 대상을 2만2650가구로 늘릴 계획이에요. 참, 후원 전화번호인 1577-8179를 꼭 기사에 넣어주세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게요.”

 -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한 전용 의료기관을 열었다는데요.

 “지난해 6월 서울 적십자병원에 ‘희망진료센터’를 설치해 외국인 근로자 의료 지원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현대차 정몽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외국인 근로자(다문화 가족)들이 내는 본인부담금의 50%도 지원하고, 서울대병원 의료인력의 도움도 받고 있습니다. 사정이 딱한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문 연 지 4개월 만에 2000명이 이 곳에서 진료를 받았죠. 지난해 12월엔 인천 적십자병원에 두 번째 희망진료센터를 열었습니다. 장애인과 북한 이주민들의 의료 지원를 전문적으로 하는 곳입니다. 올해는 상주·거창·통영에 있는 적십자병원에도 진료센터를 열 예정이에요.”

 - 최근 증가하는 NGO(비정부기구)들과 업무가 중복되지 않을까요.

 “많은 NGO들은 해외 어린이들을 지원하기도 하죠. 대한적십자사는 국내 소외계층에 집중합니다.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었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의료비가 없어 고통받는 노인과 어린이, 외국인 근로자, 탈북자 등 나눔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분들이 많아요. 36만 명의 자원 봉사자, 국민들이 보내주는 성금이 적십자사의 가장 큰 힘입니다.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있지만 재난이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가는 건 바로 적십자사입니다.”

 - 적십자 성금의 용처를 궁금해하는 국민들이 많습니다.

 “적십자의 성금 납부용 지로용지는 이·통장들에 의해 전국 1500만 가구에 전달됩니다. 이중 약 500만 가구가 연 평균 8000원 정도의 성금을 보냅니다. 이·통장들의 손을 빌리는 건 연간 80억원에 달하는 우편배송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서죠. 이달부터 2차 모금에 들어갑니다. 성금은 전액 긴급 재난구호나 국내 소외계층을 위해 사용돼요. 어떤 분들은 적십자회비가 남북이산가족 지원에 쓰인다고 오해하시는데,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이산가족 지원금은 전액 남북교류기금에서 나옵니다.”

 - 올해가 한국청소년적십자(RCY) 창립 60주년이라고 들었습니다.

 “올 여름에 아시아·태평양 지역 20여 개국의 청소년들을 초청해 국제적십자사연맹 모의총회 등의 행사를 할 계획이에요. 요즘 학생들은 공부하느라 바빠서 RCY 같은 단체 활동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더군요. 하지만 어린시절에 봉사의 경험을 갖는 건 아주 중요합니다. RCY를 국제 인도주의 글로벌 리더 양성의 장으로 발전시키려고 합니다.”

글=박혜민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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