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일부도 산업통상 반대 … 암초 만난 ‘박근혜 구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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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외교통상 기능의 분리 문제가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4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의 첫 심의에서부터 인수위 원안(原案)은 암초를 만났다. 통상교섭 기능을 신설될 산업통상자원부로 이관하는 데 대해 민주통합당 의원들은 물론 새누리당 의원들이 외교통상부에 가세해 반론을 펼쳤기 때문이다.

 외교통상 기능의 분리는 박 당선인의 의지가 담겨 있는 부분이다. 진영 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박 당선인은 그동안의 의정활동 경험상 통상은 외교부에서 하는 것보단 보다 산업을 많이 관장하고 있는 산업통상부에서 하는 것이 조약체결 때도 전문성이 있고, 통상조약이 체결된 다음에 수출을 증진시키는 데도 훨씬 낫다고 판단해 개정안을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 부위원장의 반박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의 반응은 싸늘하다. 앞서 김성환 외교부 장관이 “통상 기능의 분리는 헌법을 흔드는 것”이란 발언을 했을 때도 새누리당 의원 누구도 그를 비판하지 않았다.

 오히려 동조하는 듯한 발언이 새누리당 의원들에게서 쏟아졌다. 정의화 의원은 “대한민국 정부의 대사들이 이미 (세계에) 다 나가 있고, 그 대사들이 (통상에 대한) 역할이 있어서 (외교와 통상이) 지난 15년간 화학적으로 결합돼 있는데 그것을 무슨 재주로 나눌 수 있느냐”고 반대했다. 같은 당 정병국 의원 역시 기능의 분리에 반대하며 “전략적 차원에서 본다면 미국의 무역대표부(USTR)처럼 통상부문을 독립시키는 것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길정우·김영우 의원도 반대 내지 우려를 표하는 발언을 했다.

 민주당은 이미 단순한 기능이관에는 반대한다는 당론을 정했다. 차라리 총리실 산하 통상대표부(장관급) 형태로 두거나 현행 외교통상부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야가 한목소리로 반대하고 나선 상황이라 원안 통과가 쉽지 않아 보인다. 민주당 원혜영 의원은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할 당시에도 (통상을) 외교부로 가게 할지, 독립기관으로 둘지가 문제였는데 통상문제가 훨씬 더 중요한 과제가 된 시점에서 이런(외교부로 갈지 산업자원부로 갈지) 논의는 시대에 역행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 당선인 역시 2000년 국정감사 발언을 보면 통상업무를 장관급이 해야지 실무자가 할 수 없지 않느냐는 지적을 한 적이 있다”고 꼬집었다.

 정부부처의 장관과 야당은 물론 여당 의원들도 대통령 취임을 20일 앞두고 있는 당선자를 향해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발언이 나오는 건 이례적이다.

 새누리당 주변에선 “인수위에 대해 의원들의 불신이 크기 때문”이란 얘기가 나오고 있다. 김용준 총리 후보자와 인수위원 인사 과정에서 박 당선인이 당내 인사들에게조차 보안을 강조하면서 여당의 입지를 크게 위축시킨 데 대한 불만이 터져나온 것이란 분석도 있다. ‘대통령 당선’이란 수확을 함께 거두고도 당은 철저히 소외되고 있다는 소외감이 팽배해 있는 것도 한 요인이란 지적이다.

 실제로 길정우 의원은 “다보스포럼에서 만난 외국 통상 관련 인사들이 ‘한국은 산업보호주의로 돌아가느냐’고 질문했다”며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왜 이런 질문을 받아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인수위 쪽에 적잖은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당선인에게 제대로 전달된 것 같지 않다는 징후를 여러 가지 발견하고 있다”며 “논의 과정에 참여한 인사가 누군지도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민주통합당 김성곤 의원 역시 “ 김용준 인수위원장 (총리) 낙마에서 봤듯 박 당선인이 커뮤니케이션을 못해서 밀봉인사라는 말을 듣고 있고 밀봉인사로만 흐르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박 당선인 측은 “전문성에 대한 해석의 차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 인수위원은 “외교통상부는 외교교섭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는 걸 강조하는 데 비해 인수위의 입장은 실물경제의 전문성을 더 중시한 것”이라고 했다. 일부 인수위 관계자는 ‘상임위 이기주의’도 거론했다. 익명을 원한 핵심관계자는 “외통위의 경우 외교부 출신이 많아서 ‘친정’을 생각하는 것”이라며 “자기 상임위의 기능이 떨어져 나가는 것에 대한 우려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김경진·손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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