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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삼불에 대한 반론 지면 통해 하라

중앙일보

입력

미국의 지성 노엄 촘스키 교수는 기벽(奇癖) 이 하나 있다.

그는 여하한의 학술모임에도 일절 참석하지 않는다. 1995년에 쓴 편지(『촘스키,끝없는 도전』,그린비,1998) 를 보면 촘스키는 미국의 학계와 학술모임이란 것이 '지식인들의 사교장'에 불과하기 때문에 거부한다고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2백60쪽) .

그러나 지식사회의 투명도를 재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있다면, 한국학계야말로 가장 후미진 곳으로 분류되지 않을까 싶다.

학술상의 반대견해를 내놓는 것을 꺼리고, 그것이 '침묵의 카르텔'로 굳어진 풍토가 그렇다. 학위논문 등에서 특정인의 저작물 인용을 기피하는 풍토도 그런 맥락이다.

이를테면 동양철학의 경우 김용옥이 왕왕 그렇고, 미술사학자 최완수도 일부 대학을 중심으로 저술과 논문 인용이 금기시된다. 라이벌 관계에 있는 지도교수가 적극적으로 논문인용을 막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스승과 다른 견해를 내놓는 것은 심한 불경죄다. 말할 것도 없이 학계 동종(同種) 번식의 후유증이다.

사학자 이종욱(서강대) 교수의 고백은 그래서 신선했다. 위서(僞書) 로 분류되는 『화랑세기』를 고대사의 정식 텍스트로 끌어들이는 '모난 연구'를 하는 그가 이런 소회를 밝힌 적이 있다."필자가 지금까지 통설과 다른 주장을 펼 수 있었던 것은 이기백 선생님(현 한림대 교수) 의 지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선생님은 자신의 견해와 주장이 다른 필자의 글을 학위논문으로 인정해 주기까지 했다. 이선생님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학위논문으로 승인받지 못했다면 나는 아예 역사연구 자체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한국고대사의 새로운 체계』, 소나무,1999)

이런 얘기는 보름 전 '책이 있는 토크쇼'(17일자 43면) 로 소개된 『한국미술,그 분출하는 생명력』(월간미술) 의 저자 강우방 교수 뒷얘기를 위해서다."스승 삼불(三佛) 김원용 선생은 젊을 적 나의 우상이었지만,실은 그분은 미술사를 한 적이 없다고 나는 이제 감히 지적하려 합니다". 우리 풍토에서 그 발언은 자칫 스승 모독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그의 순수한 학문적 발언임을 기자는 확신한다. 한데 그 발언이 최근 미술사학계에서 논란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중요한 미술사학자 몇 분이 사실 확인차 기자에게 전화를 거푸 했던 것도 그 맥락이다.

삼불에 대한 비판은 실은 책 곳곳에 이미 노출돼 있다."김원용 선생에 대한 실망으로 고고인류학과를 떠났다"(14쪽) 고 밝힌 것도 그런 예다. 또 한국미의 원형으로 '분출하는 생명력'을 지목한 것 자체가 삼불 미술사의 아마추어리즘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야나기 무네요시 이래로 이른바 '민예(民藝) 적 아름다움'에 대한 부정이다. 물론 논란의 여지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술사 1세대를 대표하는 삼불의 학문적 성취에 대한 평가는 후학들의 몫이라는 점에서 강교수의 발언은 있을 수 있는 목소리, 나와야 할 문제 제기다.

기자가 알기에도 삼불은 미술사와 관련해 개설서 이외에 이렇다할 논문이 없다. 고고학과 관련해 무령왕릉 발굴조사에서 큰 실수도 했다.

그런 점에서 선학(先學) 의 학문적 성취와 한계에 대한 자리매김은 너무도 당연하다. 해서 밝히지만 '행복한 책읽기'는 이런 사안과 관련한 여하한의 반론과 재반론을 환영한다.

본디 열려 있는 지면이고, 그것이 우리 학계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밑작업이라면 말이다.

조우석 출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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