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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나] 개그맨·MC 정재환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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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을 하다보니 말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새삼 알게 됐다. 이를테면 연예인의 잘못된 발음이 청소년들에게 전염되는 것을 수없이 봤다.

한글과 우리말에 대한 관심은 방송으로 먹고사는 나에겐 일종의 의무다. 지난해 대학(성균관대 사학과) 에 다시 들어가 공부하면서 이런 생각은 더욱 굳어졌다. 현재 나는 한글문화연대 부대표를 맡고 있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영어 공용어화 논쟁은 나에게 끊임없이 화두를 던지고 있는 문제고 최근 읽은 책의 대종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복거일(소설가) 씨는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문학과지성사) 에서 세계화 시대에 우리나라가 잘 살기 위해서는 영어를 공용어화해야 하고, 그래야만 영어를 쉽게 배워 잘할 수 있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 책은 장차 우리말이 '박물관 언어'가 될 것이라 예언했다. 내게는 우리말과 글의 위기를 역설적으로 인식케 해주었던 셈이다.

힘센 나라의 언어가 힘없는 나라의 언어를 집어삼킨다고 김영명(한림대 교수, 한글문화연대 대표) 씨는 말한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언어 제국주의'다. 복씨가 말한 '거친 민족주의'나 '닫힌 민족주의'가 바람직하지 않다면 '언어 제국주의'는 더 크게 비판받아 마땅할 것이다.

세계화의 미명 아래 진행되는 미국화는 온 세계를 미국화하지만 결코 같아질 수 없으며 단지 종속시킬 뿐이다.

김영명의 『나는 고발한다』(한겨레신문사) 는 영어 제국주의와 함께 우리 안에 뿌리 깊은 사대주의(과거에는 중국을 섬겼으나 이제는 그 대상이 미국이 되었다) 를 고발하고, 우리가 주체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 우리말과 글을 잘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쨌거나 영어 공용어화의 논쟁 와중에 의문이 생긴다. 현재 영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는 나라는 대개가 영어를 쓰는 제국의 식민지였다. 이상하다.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영국의 식민지가 아니었는데 왜 영어 공용어화를 얘기하고 있는 걸까.

한학성(경희대) 교수의 책 『영어공용어화, 과연 가능한??책세상문고) 는 영어 공용어 논쟁의 허점을 지적하며 합리적이고 발전적인 논쟁을 위해 영어 공용어화의 실체를 파악해야 함을 역설한다. 사람들이 영어 공용어론에 동의하는 까닭은 그것의 실체를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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