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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의 기타리스트 조지해리슨 숨져

중앙일보

입력

세상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태도-. 그것이 지난달 29일 지병인 폐암으로 숨진 전설적인 록그룹의 리드 기타리스트 조지 해리슨의 음악이자 인생이었다.

존 레넌이 1980년 광적인 팬의 총탄에 맞아 숨진 데 이어 해리슨이 58세로 유명을 달리함으로써 비틀스는 서서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4인조 비틀스 멤버 가운데 이젠 폴 매카트니와 링고 스타만 남았다. 해리슨은 지난 4년간 폐암.뇌종양 등과 싸워왔으나 이날 오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친구의 집에서 부인과 외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해리슨은 43년 영국 리버풀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땐 문제아로 지목받았으나 열세살 때 어머니가 사준 기타를 접하면서 음악에 빠져들었다. 리버풀 학원에서 1년 선배인 폴 매카트니와 만난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그룹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대중적 인기는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에 미치지 못했지만 음악적으로는 두 사람 못잖은 영향력을 발휘했다. 처음엔 그의 곡이 채택되지 않아 다른 멤버들과 갈등을 빚었으나 '아이 니드 유' 등을 통해 싱어송라이터로 자리를 잡았다.

'섬씽''내 기타가 우아하게 울리는 동안' 등의 숱한 히트곡을 만든 그는 존 레논에게 기타를 가르칠 정도로 탁월한 기타리스트이기도 했다.

특히 그는 60년대 후반 인도를 여행하면서 얻은 경험을 살려 비틀스의 선율에 동양의 명상세계를 접목하기도 했다. 70년 비틀스 해산 후엔 동료 음악인들을 규합해 '방글라데시 기아돕기' 등 자선공연을 꾸준히 열었다.

해리슨은 비틀스 멤버 중 가장 차분한 성격으로 유명하다. 영국 BBC방송은 부음 기사의 제목으로 '조지 해리슨:조용한 비틀스'를 달 정도였다.

자기 주장이 강했던 존 레넌이나 폴 매카트니와 달리 그는 타고난 침착함과 섬세한 감성으로 비틀스 멤버들을 끌어모으는 역할을 했다.

그의 사망소식을 들은 존 레넌의 부인 오노 요코는 "그의 인생은 '마력적'이었다"며 "고마워요, 조지. 당신을 알았던 건 장엄한 일이었어요"라며 슬퍼했다.

음악평론가 송기철씨는 "비틀스의 신화는 해리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대중음악의 한 세대가 마무리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해리슨은 66년 모델 출신의 페티 보이드와 결혼했지만 부인 보이드가 절친한 친구였던 에릭 클랩턴과 가까워지자 이혼했다. 그리고 78년 둘째 부인 올리비아를 만나 아들 대니를 낳았다. 90년대에는 영화 제작자로도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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