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국회의 신중한 법안심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정부·여당은 농업기본법등 7개 경제 관계법안과 이미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9개 사업에 대한 대외차관 지불보증동의안을 이번 임시국회 회기안에 심의 통과시키기로 방침을 세웠다. 국정감사 보고서를 처리한 국회본회의는 13일 결산보고서를 처리키로 결정해 놓았으므로 정부·여당이 계획한 법안 처리는 회기말일인 14일 하룻동안에 하는수밖에 없게 되었다.
누적된 안건을 처리키위해 회기30일간을 예정하고 열렸던 금차의 임시국회가 박의원「테러」사건조사, 반공법의 적용한계와 통일문제에 대한 대정부질의등 여야정치싸움에만 골몰하여 귀중한 시일을 허송하다시피 했다는 것은 세인공지의 사실이다. 그러했던 국회에서 회기말을 하루 앞두고 정부·여당이 7개 경제관계법안과 9개 사업에 대한 지보동의안을 무더기로 통과시키고자 한다는 것은 국회의 입법기능을 심히 경시하는 처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회가 개회중 공??한 정쟁에 열을 올리다가 회기의 막바지에 이르러 중요안건을 상정해놓고 주로 여당이 수의 위력을 발휘하여 일방적 통과를 강행하는 악습은 결코 작금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이런 악습은 소수당이 국회를 정쟁의 무대로 삼아 정치공세를 펴는데 주력해 입법심의에 필요한 귀중한 시간을 허송하는데도 비롯하려니와 다른 한편으로는 법안 제출을 고의적으로 지연시켜 국회로 하여금 심의에 필요하고도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으려는 정부의 대국회전술에 전래하는바도 크다.
그러므로 이런 악습을 교정하기 위해서는 야당이 대정부질의공세를 펴되 국회의 고유한 사명이 무엇인가를 망각치 않도록 해야 하며 또 정부는 국회의 기능을 크게 존중하여 모든 안건을 국회가 다루는데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입법사업을 유심히 관찰하건대 대부분의 법안이 일본의 법률을 원형대로 모방하고 있음을 부인키 어렵다. 이는 외국법을 비교·연구하는데 일본의 것이 가장 손쉽게 이해할 수 있고 또 여건이 유사한 탓이기도 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법안 기초자나 국회의 전문위원, 그리고 국회의원들이 입법의 조사연구를 심히 게을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일법을 모방하는 입법활동이 국가위신을 손상시키고 있다는 것도 깊이 생각할 문제려니와 그 일본법이 우리 사회 실정에 적합칠 않아 사문화하거나 혹은 빈번한 개폐를 면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안일한 입법방식에 대해서 정부와 국회는 엄중한 반성을 해야할 것이다. 안일과 졸속을 위주로 하는 입법활동은 실로 조령모개의 근인을 이루고 우리 사회 법질서를 부단히 동요시키는 원천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부·여당이 이제 하룻동안에 심의·통과시키고자 하는 7개법안과 9개 지보동의안은 그 모두가 중요한 것이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청구권 민간 보상법안」은 일제통치로 말미암아 피해를 입은 민간인의 이익에 중대한 관련을 갖는 것이요, 또 9개 지보동의안은 국가재정과 국민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니 만큼 절대로 졸속한 심의통과를 용인할 수 없는 것이다. 9월 정기국회까지 아직도 1개월반이나 시일이 남아있는 것인즉 국회는 여·야합의하에 회기를 연장하여 중요안건을 충분한 토의를 거쳐 원만히 처리토록 함이 마땅할 것이다. 여당은 정부의 거수기가 아닌것이니 입법부 의원으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회기연기에 앞장서주기를 바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