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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의 눈물, 아베의 웃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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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현기
도쿄 총국장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올해 첫 외출은 영화관이었다. 신년 연휴 기간 도쿄 롯폰기의 영화관에서 부인 아키에 여사와 ‘레미제라블’을 봤다. 아베는 자타가 공인하는 영화광.

 마이니치신문 기자가 물었다. “(레미제라블을 보고) 울었습니까.” “음, 아내는 울었지만…난 나이 들어 눈물이 헤퍼졌다고는 해도 그런 걸로는…(눈물이 나지 않았다는 뜻). 그보다는 얼마 전 DVD로 본 ‘철의 여인(마거릿 대처 전 영국총리 이야기)’을 보고 울컥했어.”

 기자가 다시 물었다. “어떤 장면에서 그랬나요.” “하나는 포클랜드 전쟁을 승리로 이끈 다음 영국 하원에 나와 영국 국민에게 단결을 호소하는 장면, 또 하나는 세출 삭감으로 국민적 비판을 받고 모질게 공격을 받지만 초지(初志)를 일관시키는 부분이었지.”

 ‘아베의 눈물’은 그의 성향과 지향점을 시사한다. 부조리에 저항하고 사회적 약자를 편드는 것에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다. 더 크고 강한 국가 만들기에 감동받는다. 옆과 뒤를 보기보단 먼 앞을 보고 질주한다. 빼다 박았다. 격렬한 국내 저항에 개의치 않고 미·일 안보조약 체결을 강행했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말이다. ‘아베의 눈물’은 오는 7월 참의원 선거 승리 후 독한 맘 먹고 밀어붙이려 하는 평화헌법 개정의 예고편이다.

 한편 ‘아베의 웃음’은 진행형이다. 일본 주가는 지난해 11월 이후 두 달 만에 30%가 뛰었고 엔화 값은 15%가량 떨어졌다. 11주 연속 주가가 뛰고 있는 건 1971년 이후 무려 42년 만의 일이란다. 올해 환율을 달러당 78엔으로 상정했던 일본 기업들은 환율(현재 91~92엔 수준) 차 만으로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을 거저 먹게 됐다. 그러니 모두가 “아베 잘 한다”를 외치며 환호한다. 아베로선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중앙은행의 목을 비틀어 돈을 풀겠다는, 거친 ‘아베노믹스(아베의 경제정책)’에 서방 국가들은 경계와 우려를 보낸다. 하지만 일본 내에선 그건 변방의 목소리다. “‘엔고’ 시절 우리가 미국과 유럽에 불평 한 번 했더냐” “15년 디플레에서 벗어나 보겠다는데 웬 잔소리냐”는 게다.

 ‘아베의 눈물’ ‘아베의 웃음’ 모두 가볍게 넘겨버릴 일이 아니다. 옆 나라 헌법 몇 조항 바뀌고 환율 얼마 올랐다 떨어지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일본이란 나라와 국민이 급속하게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주말 NHK에선 일본의 한 대형 전자업체가 도산 위기 속에서 중국과 한국에 대역전극을 펼치며 부활하는 내용의 드라마 ‘메이드 인 재팬’이 시작됐다. 소니를 묘사한 것인지 파나소닉을 모델로 한 것인지 모르지만 절묘한 타이밍이다. 일본의 정부·시장·언론, 그리고 국민이 어깨동무하며 하나로 호흡을 맞춰가는 양상이다. 적어도 최근 10여 년간 없던 일이다. 그래서 긴장된다. 일본은 우리가 흔히 여기는 것처럼 ‘한물간’ 나라가 아니다.

김현기 도쿄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