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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역은 바다의 채소” 유럽인들 입맛 변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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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보다 식재료에 주목하라.” 음식박람회 ‘2013 마드리드 퓨전’(1월 21~23일)에서 만난 스페인 셰프 알베르토 아드리아(44)는 요리계의 최신 트렌드에 대해 이렇게 짚었다. 알베르토 아드리아는 ‘미각 혁명가’로 꼽히는 스페인의 스타 셰프 페란 아드리아(51)의 동생이다. 알베르토는 1985년 열여섯 살 나이로 형 페란이 운영하는 식당 ‘엘불리’에 들어가면서 요리계에 입문했다. 영국 잡지 ‘레스토랑’ 선정 ‘세계 최고 레스토랑’에 다섯 차례나 꼽힌 ‘엘불리’는 2011년 문을 닫기 전까지 연간 예약 문의 전화가 200만 통이나 됐던 곳이다. 패스트리 전문 셰프가 된 알베르토는 현재 세계 요리계에서 형만큼이나 손꼽히는 유명 인사다. 98년부터 요리연구소 ‘엘불리 톨러’를 운영하며 미식 트렌드를 선도해온 그가 2013년을 전망하며 “새로운 기술이 각광받던 시대는 지나갔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주목해야 할 요리계의 키워드, 세 개를 던졌다. ‘바다’와 ‘채소’, 그리고 ‘페루’다. 그 면면을 스페인 마드리드 ‘이페마 박람회장’에서 열린 ‘2013 마드리드 퓨전’ 현장에서 찾아봤다.

마드리드(스페인)=이지영 기자

‘2013 마드리드 퓨전’ 행사장에서 한 관람객이 스페인 업체 ‘프루타스 엘로이’의 채소들을 살펴보고 있다.

바다, 식재료의 보고

스페인의 유명 셰프 알베르토 아드리아.

세계 9개국이 참여, 100여 개의 부스를 설치한 올 ‘마드리드 퓨전’ 행사장에선 바다 식재료가 각광을 받았다. 특히 미역 등 해조류의 부상이 두드러졌다. 원래 해조류는 우리나라와 중국·일본 등 동아시아에서만 먹었던 식재료다. 서양에선 ‘바다의 잡초(seaweed)’로 치부하며 먹기를 꺼렸다. 하지만 이번 ‘마드리드 퓨전’ 행사장에선 ‘바다 채소(sea vegetable)’로 통했다. 스페인 식품업체 ‘포르토 무이노즈’의 부스에 붙어있던 안내문구 덕이다. 이 업체는 미역·다시마·김·파래·말미잘·벨벳 호른·덜스 등 스페인 갈리시아 지역 해안에서 채취한 24가지 해조류를 전시하고 있었다. 이곳의 해외영업 담당 매니저 비비아나 카노사는 “해조류가 철분·비타민·미네랄·섬유질이 많은 건강식품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스페인 등 유럽에서도 먹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면서 “특히 육지의 동식물에 부족한 성분인 요오드가 많아 피를 맑게 해준다는 것이 해조류의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해조류로 생선을 감싼 뒤 오븐에 넣어 구워먹거나, 질퍽질퍽하게 가공해 달콤한 디저트로 만들어 먹으면 맛있다”고 설명했다.

 바다 식재료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 중엔 ‘짠맛’도 있다. 음식을 간을 맞추기 위해 필수적으로 넣어야 하는 소금 성분을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한 재료로 충당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바다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포르토 무이노즈’는 함초 등 바닷가에서 자라는 식물도 식재료로 내놓았다. 관람객들은 함초 잎을 뜯어먹어보며 짭짤한 맛을 신기해했다. “이 짠맛은 나트륨 대신 칼륨이 내는 것”이라는 게 업체 측 설명이다.

전시 중인 해조류들.

 영국 업체 ‘몰든 솔트’는 바닷물을 끓이는 영국 에식스 동부 해안지역의 전통 방식으로 만든 소금을 전시해 눈길을 끌었다. 바닷물이 가장 짠 만조 날, 간수를 만들어 불순물을 가라앉히고 윗물만 모아 솥에 넣고 약한 불에 끓이는 방식으로 만든 소금이다. 여느 소금보다 바삭바삭하며 칼슘·칼륨·마그네슘 함량이 높다고 한다. 관람객들은 초콜릿 쿠키 위에 새하얀 소금 알갱이를 얹어 먹으며 단맛을 강화시키는 짠맛의 효과를 즐겼다.

이번 박람회에선 소금도 중요한 식재료로 관심을 끌었다.

 아예 바닷물 자체를 식재료로 내놓은 업체도 있었다. 스페인의 ‘메디테라네’다. 이 업체는 지중해 심해 바닷물을 채취해 페트병에 담아 요리용 물로 내놓았다. 음식을 할 때 소금 대신 사용하란 용도다. 업체 측은 “연안 바닷물을 모아 얻은 소금보다 훨씬 깨끗하다”고 소개했다.


채식 열풍 … 새 재료 발굴 한창

과일·채소 등을 냉동 건조시켜 식재료로 가공한 스페인 업체 ‘소사’의 전시 부스

‘마드리드 퓨전’ 행사장 전체에서 채식 바람이 거셌다. 건강을 위해 어떻게든 육류 섭취를 줄여보겠다는 안간힘이 느껴졌다. 박람회장을 찾은 셰프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채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저마다 채소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세계 베스트 50 레스토랑’ 4위에 오른 식당 ‘돔’을 운영하고 있는 셰프 알렉스 아탈라는 요리 시연 프로그램에서 아마존에서 채취한 채소와 꽃을 꿀로 버무린 샐러드를 선보였다. 또 프랑스의 미슐랭 3스타 세프 파스칼 바르보는 ‘소금에 절인 산초’를 소개하면서 “2011년 한국을 방문해 흑마늘과 김치·장아찌 등 채소를 숙성, 가공시키는 다양한 방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샘표식품 부스에 전시된 된장. 배추에 곁들여 맛볼수 있게 했다.

 된장·간장 등 한국의 장(醬)이 전시된 샘표식품 부스가 행사 기간 내내 관람객들로 붐볐던 이유 중엔 ‘고기 맛 내는 식물성 식재료’란 점이 큰 부분을 차지했다. 훌륭한 ‘채식 도우미’가 된다는 이유다. ‘마드리드 고급 음식학교’ 학생이라는 루시아 페리스(28)는 “장 소스를 넣은 양파 수프에서 고기의 감칠맛이 난다”고 말했다. 스페인의 미슐랭 3스타 셰프 조안 로카 역시 “파스타용 토마토 소스를 만들 때 고추장만 약간 넣어줘도 맛이 훨씬 진해진다”면서 “이렇게 만든 파스타를 10세, 16세인 내 아이들도 참 좋아한다”고 말했다. 샘표식품과 함께 지난 6개월 동안 한국의 장에 대해 연구한 스페인 알리시아 연구소에서는 더 구체적인 자료를 내놓았다. 된장으로 만든 거품에서 푸아그라 맛이 나고, 인도네시아 스타일 볶음면인 ‘미고랭’에 쌈장을 넣으면 베이컨 맛이 느껴진다는 식이다.

 행사장에 부스를 차려놓고 다양한 채소를 소개하는 업체도 여럿이었다. 네덜란드 업체인 ‘코페르트 크레스’는 새싹채소와 식용꽃 등을 포함한 60가지 채소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이 회사의 아네트 압스토스 스페인 지사장은 “점점 채식주의자가 늘어나면서 예전에는 먹지 않았던 채소들이 식재료로 개발되는 일이 많아졌다”면서 “새로운 채소 먹거리를 발굴하기 위해 시골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탐문조사도 벌인다”고 설명했다. 또 취급하는 채소의 종류가 1000여 종에 달하는 스페인 업체 ‘프루타스 엘로이’의 욜란다 루아노 매니저는 “고급 음식일수록 사용하는 채소가 중요하다”면서 “어떤 채소가 들어가냐에 따라 미세한 맛의 차이가 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계가 주목하는 페루 음식

페루정부관광청이 마련한 부스. 페루의 전통음료를 현장에서 만들어 관람객들에게 맛보였다. [사진 샘표식품]

알베르토 아드리아가 향후 세계 미식계가 주목해야 할 나라로 페루를 꼽은 이유는 “식재료가 훌륭하기 때문”이다. 그는 “좋은 식재료는 무조건 살아남게 돼 있다”고 말했다. 고산 지대인 페루에서는 3000종 이상의 감자가 생산되며 고추·옥수수 등도 생산량이 많다. 고대 잉카제국에서 재배됐던 고단백 곡물 ‘퀴노아’도 페루가 주산지다. 퀴노아는 단백질·칼슘·식이섬유·미네랄 등이 풍부해 미국·캐나다·일본 등에서 건강식품으로 인기를 얻고 있으며, 특히 단백질 섭취가 어려운 채식주의자들이 즐겨먹는 곡물이다. 또 페루 서쪽의 태평양과 북쪽 아마존강 유역도 풍부한 식재료의 산지다. 다양한 야생식물과 어류, 해산물 등이 페루 음식 맛의 근원이 되고 있는 것이다.

 페루 음식의 인기는 지난해 12월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브스에서 꼽은 ‘2012년 10대 식문화 트렌드’에도 포함됐을 만큼 이미 서구 사회에선 바람을 탄 현상이다. 페루 음식에는 일본·중국·스페인·안데스식 요리법 등이 모두 녹아 들어 있어 다양한 맛을 낸다. 각종 생선과 조개류를 레몬이나 라임 등 시큼한 소스로 버무린 페루식 회 요리 ‘세비체’, 포도로 만든 증류주에 레몬즙·시럽을 섞은 뒤 계란 흰자 거품을 올린 ‘피스코 사워’, 소의 심장을 소스에 묻혀 구운 꼬치 요리 ‘안티쿠초’ 등이 대표적인 페루 음식이다.

 이번 ‘마드리드 퓨전’에서 페루는 민·관이 나서 홍보 활동을 활발히 벌였다. 페루 셰프 헥토르 솔리스는 요리 시연 프로그램에서 세비체의 다양한 응용요리를 선보였다. 날 생선으로 만든 세비체뿐 아니라 뜨거운 세비체, 오리고기로 만든 세비체 등이다. 행사장에는 페루정부관광청이 마련한 부스도 있었다. 부스를 찾은 관람객들은 관광청 측이 준비한 페루 음식을 먹으며 남미의 맛을 즐겼다. ‘피스코 사워’의 레시피를 적어놓은 명함 크기의 홍보물도 불티나게 나갔다. 낙천적인 남미 사람들의 친근한 환대도 관람객들을 끄는 요인이었다. 홍보담당자라며 자신을 소개한 파울라 로메로는 취재 중인 기자에게도 “이것도 먹어보라”며 연신 음식을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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