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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종교다원주의 몸살 앓는 한국 기독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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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신준봉
문화스포츠 부문 기자

10월 부산에서 열릴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를 둘러싼 개신교 내부 갈등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WCC 한국준비위원회 상임위원장인 김삼환(명성교회 담임) 목사는 31일 부산에서 조찬기도회를 열었다. 목회자 120명에게 WCC에 대한 협조를 부탁했다. “부산에서 성령의 바람이 불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부산을 택하신 만큼 힘을 모아달라”는 당부였다.

 김 목사의 ‘행보’는 하루 전날인 지난달 30일 보수 성향의 예수한국WCC대책위원회(위원장 박성기 목사)가 부산 벡스코 앞에서 WCC 개최 반대 집회를 연 데 대한 대응 성격이다. 대책위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의 수단이 아니라는 WCC의 부산 총회를 좌시할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진보적인 한신대 신학과 교수 13명은 같은 날 WCC 총회 개최를 위해 선포된 공동선언문을 폐기하라는 내용의 호소문을 발표했다.

 공동선언문은 지난달 13일 진보적인 개신교 연합기관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보수파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WCC 협력을 전제로 발표한 문건을 말한다. 개신교 보수파는 총회 자체를 반대하고, 진보파는 선언문의 내용을 인정할 수 없다는 거다. 신학적 입장의 충돌이다.

 사태의 원인은 뭘까. WCC는 개신교 내 차이와 분열을 넘어 일치와 연합을 꾀하는 국제단체다. 종교 다원주의를 인정하고 환경·동성애 등 민감한 이슈에 대해 진보적 목소리를 내 왔다. 1948년 결성돼 전 세계 350개 교단, 5억6000만 명의 신자가 소속돼 있다. 부산 대회에는 5000여 명이 온다.

 문제는 공동선언문이 종교다원주의를 배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거졌다. WCC와 신학적 입장을 함께하는 NCCK는 그간 대회 준비를 도와 왔다. 그런 NCCK가 왜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의 선언문에 서명했는지는 미지수다. NCCK가 공동선언문을 수용할 수 없다며 입장을 번복하자 보수적인 그룹도 발끈하는 형국이다.

 WCC 총회는 대회 취지·규모로 인해 개신교의 올림픽이라 불린다. 최근 준비 상황 점검차 스위스의 WCC 본부 관계자들이 방한했다. 한국 개신교는 손님을 초청해 놓고 볼썽사나운 싸움을 벌이는 부부꼴을 면키 어렵게 됐다. 현장에서 발각됐으니 이미 엎질러진 물, 명예를 회복할 길조차 마땅히 않다.

 복잡한 교리 싸움은 신학자들의 몫이다. 종교 다원주의를 반대하는 입장과 관련해 한마디만 거들고 싶다. 세계 분쟁 지역의 상당수는 종교적 입장 차가 관련돼 있다. 상식적인 ‘종교 감정’은 종교의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상식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의 입장만 강변하는 한국 개신교계가 안타깝다

신준봉 문화스포츠 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