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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제」궁의 「고독한 외교」|「드골」11일간의 방소결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유럽」의 판도를 바꿔보려는 웅대한 꿈을 안고 소련을 찾은 「드골」불란서대통령은 3O일로써 11일간의 방문일정을 끝내고 7월1일 귀국의 길에 오른다. 수차례에 걸친 소련수뇌진과의 회담에서 과연「드골」은 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았을까 결과적으로 소련에대한 「드골」의 선물-「나토」탈퇴선언은 「크렘린」을 그다지 대단하게 감동시키지 못한것 같다.
이러한 사실은 소련이 독일문제에대해 조그만치도 후퇴하지 않았다는데서 뚜렷이 나타난다. 「드골」의 주장인 통독문제에 대해 소련측이 양보할 수 없는 가강 중대한 이유는 동독을 저버릴수없는 소련의 입장때문이지만 이러한 독일문제에 대한 견해차이로 인하여「유럽」안보문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드골」이나 「크램린」이 똑같이 유감으로 생각하고있다.
소련은 「유럽」안보라는 대전제밑에 전「유럽」회담개최를 계속 고집했으나 「드골」은 이의 선행조건으로서 소련이 서독과 일련의 예비적쌍무협상을 가져야할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독일문제와 「유럽」안보문제를 분리하여 처리해보려는 소련의 속셈을 표면화시킨 것이라고 볼수있다. 「드골」이 이러한 소련의 입장에 휘말려 들어가지 않을것이 명백한 사실이고 보면 이 두가지 문제점에 대한 불란서와 소련의 기왕의 태도가 재확인 됨으로써만 그친것도 무리라고 볼수는 없을것같다. 양국간의 협의사항중 그래도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소련 「로키트」에의해 불란서 인공위성을 발사시킨다는 구체적 합의내용을 필두로 한 광범한 불·소우주개발협정.
이밖에 경제·문화등 모든 분야에 있어서 양국문의 관계개선등을 들수 있으며 월남문제에 대하여 1954년 「제네바」협정을 바탕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예상대로의 불·소의 공통된 태도가 재확인되었을뿐이다. 그러나 「드·골의 역사적 방소」라는 거창한 전제에서 보면 이것들은 너무나도 감약한 성과라 하겠다. 때문에 이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르는 성과는 오히려 앞으로 정기적협의를 가짐으로써 불·소간에 계속적인 「대화의 광장」을 마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뿐만아니다 「크렘린」과 「엘리제」궁사이에 항구적인 직통전화를 개설하기로합의한 사실은. 앞으로의 불·소유대강화에 도움을 줄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합의도 의례적으로 「있을 법한것」이라고 돌려 버릴수도 있으나 미국의 개입없이 「유럽」문제를 해결하려면 불·소가 제휴해야한다는 「드골」의 입장이나, 그래도 쉽사리 무시해 버릴수만은 없는 「유럽」에서의 불란서의 위치에 대한 소련의 대불편향성으로 미루어 볼때 이들 양국의 대화가 잦으면 잦을수록 「유럽」및 국제정세에 끼치는 영향도 커질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어쨌든 이번의 「드골」 방소는 구주사에 하나의 「에포크」를 만들었다. 비록 예측했던대로 「드골」의 방소성과가 별로 뚜렷한 것이 없다지만 불란서에 대한 소련의 인식이 새로와질 가능성이 생기게된 것은 「드골」이 노리는 조그마한 성과를 그런대로 달성시킨것으로 보아야겠다. 그러나 실상 이러한 성과를 얻는다는 것도 쉬운일은 아니었던것같다. 「크렘린」이 비록 「드골」이나 불란서를 과소평가한 때문은 아니겠지만- 「드골」의 일정가운데 소련의 핵군력을 시위해 보임으로써 미국의 핵우산밑에 있는 불란서를 소련의 품안에 넣어보려는 의도를 보였을때도 「드골」의 콧대는 꺾이지 않음으로써 소련이 멋대로 불란서를 움직일수 없다는 인식을 갖게 했었다.
비록 「드골」에게 일말의 불안감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드골」은 불란서군이 「나토」사령부로부터 계속 철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란서는 아직 서방진영에 속해 있으며 가까운 장래에 「나토」에서 탈퇴할 생각은 없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어쨌든 「드골」 방소 총결산의 전모는 방소일정이 끝남과 함께 발표될 공동 「코뮤니케」에서 밝혀지겠지만 한마디로해서 「드골」의 소련방문은 여러가지 문제점에 대한 기왕의 소련방침은 조금도 변경시키지 못한 채 막을 내리고 말았다. <정규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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