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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함복순 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전쟁이 어떤 것인지 전 몰라요. 그렇지만 전쟁이라면 말도 듣기 싫어요.』
산허리에 띄엄띄엄 집을 지어 한 마을을 이루다시피 한 「홀트·고아원」에서 다섯 살 짜리 19명을 돌보는 고아출신의 보모 함복순(21)양의 말이다. 통통한 얼굴에 쌍꺼풀진 큰 눈이 몹시 빛나고 있었다. 4살 때 전쟁을 만났고 서울 북아현동 할머니댁 밖에 기억이 없다는 함양은 눈물이라든지 서러움 같은 기색 하나 없이 지내온 얘기를 했다. 무엇이 이렇게 상냥한 복순양 에게 강인한 표정을 짓게 만들었을까.
『전쟁 같은 것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 지구상에 전쟁이 없는 것은 10년에 1년 꼴이 고작이라는데-. 함양은 한국보육원 수송비행기로 제주도에 건너가 8년 동안 지냈다. 그곳에서 국민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도 「홀트·고아원」으로 옮겨졌다.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그는 학비와 용돈, 침식에 대한 걱정이나 불편 없이 지냈다.
『저는 보통 중류가정에서 자라는 아이정도로 걱정 없이 지냈어요. 여학교때 제반의 아이들은 반 이상이 저보다 더 고생하며 다녔거든요.』
걱정 없이 자랐다는 얘기를 하면서 처음으로 함양은 고개를 떨구었다. 함양은 「피아노」도 치고 「오르간」도 배웠다. 아이들이 모두 잠들고 나면 일기도 쓰고 뜨개질도 한다. 「테이블」보를 만들기 위한 분홍과 흰색의 들국과 「모티브」를 매만지면서 함양은 수줍은 듯이 말했다.
『저는 별다른 꿈이 없어요. 그저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하고 좋은 가정을 이루겠어요. 물론 아이들을 잘 기르는 그런 가정 말예요.』
뼈저리게 아쉬웠던 것은 가정이다. 그리고 가족들과의 얽힌 애정, 그것을 함양은 찾아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와 같은 고아는 생기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전쟁이 없고 고아가 없는 세상이 제일 좋은 세상일 것이라는 것이다. 함양의 기원과는 달리 한국의 고아는 증가일로에 있다. 휴전당시 5만4천 여명이 64년 현재 6만7천으로 늘어나고 있다. 엄청난 일을 반성 없이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이들 아닌 어른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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