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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격전지 (2)|884고지 전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중동부 전선 884고지에는 16년전의 격전을 말해주는 총알이 박힌 나무들을 볼 수 있고 아직도 이름모를 괴뢰군의 백골이 뒹굴고 있다.
이 지역을 지키고 있는 승리부대는 비록 적의 유골이긴 하지만 진혼제를 거행, 억울한 넋을 위로해주겠다는 것이다.
태백의 한 줄기인 884고지는 금강산과 향로봉의 중간에 있는 준험한 산악으로 심한 경사와 기암이 연속되어 부대이동과 보급이 곤란하였었다.
1951년 8월 폭우가 쏟아지는 궂은 날씨에 국군 11사단과 괴뢰군 45사단 사이에는 이 고지를 서로 뺏으려고 일진일퇴의 육박전을 벌이고 있었다.
호속에서 비를 흠뻑 젖은 살갗은 구름사이로 힐끔 내다보이는 햇빛에 터서 아리었다고 당시의 지휘관이었던 김경호 중령은 기억을 더듬었다.
11사단의 용사들은 함포의 지원을 받고 적과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공격 열하루만에 이 고지를 완전 점령함으로써 전승의 개가를 올렸다.
함포사격이 어찌나 심했던지 884고지가 이제는 883고지로 1「미터」가 깎이고 말았는데 이 통에 적과 아군의 병사들이 흘린 피와 부서진 뼈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러나 세월은 흘러 이제 고지에는 다시 수목이 우거지고 군데군데 철쭉꽃으로 붉게 물들고 있다.
바로앞 남강을 끼고 비무장지대가 가로 놓여있고 건너편 산에는 괴뢰군의 초소가 눈에 띈다. 884고지에 진을 치고 있는 승리부대 용사들의 매서운 눈초리는 24시간 적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다.
그들은 또한 고지 오른쪽 벌판에 세워진 「사라」호 태풍 난민정착부락의 안전도 보살펴주고 있다. 승리부대는 마을에 내려가 김도 매주고 사람과 짐을 수송해주기도 한다.
이 마을 사람들의 수확은 해마다 늘고 재산도 불어 이제는 난민이라기 보다 부유한 농민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지난날 국군이 수복하고 단단히 지키고 있는 884고지의 푸짐한 선물을 독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대민사업도 활발히 진척시키고 있는 승리부대장 유병형 장군은 휴전으로 격전은 없으나 장병들의 사기를 높이고 진지를 견고히 구축하면서 한편으로는 적의 오열침투를 봉쇄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설명해주었다.
이 때문에 884고지 일대에서는 맹렬한 훈련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진행되어 비무장지대 이북을 응시하는 장병들의 자세는 더욱 늠름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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