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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현실과 그 체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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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3일은 단오. 단오면 농가에선 보리타작이 절정을 이룬다. 사상 최고라는 올해의 보리 농사이고 가을에도 풍년이 들면 올해 농사는 4천4백만석(잡곡류 포함)에 달할 것이라지만 그래도 3백48만석이 모자라 외곡신세를 져야할 형편-.
이러한 만성적 식량부족은 누진적으로 불어나는 인구, 농경지의 협소와 영세성, 뒤떨어진 영농기술, 그리고 자본궁핍 등에 원인이 있으나 이것을 개선못하는 정책빈곤도 중요한 요인의 하나. 앞으로 곡가에 대하여 다각도로 살펴본다.

<곡가의 귀착점은 도시의 소비위주>
양곡을 생산하는 농촌, 소비하는 도시의 틈바구니에서 역대정권은 중농정책을 억세게 내세워왔으나 곡가의 귀착점은 도시중심의 소비자 위주였고 정부가 역점을 기울이는 물가안정정책은 양곡생산비를 보장하기는커녕 단순재생산의 여지마저 막는 농민의 희생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6할이 넘는 농민이 약 4할을 헤아리는 도시민을 위해 성립되는 한국적 곡가의 기형성-그 체질은 어떤가.
황금일색의 보리풍년을 맞으면서 최근 산지 곳곳에서 농민들은 오히려 「풍년파산」을 걱정하고 있다.
올해의 보리수확은 작년보다 27%나 증산된 1천2백12만석(제1차추계·신통계로는 1천8백만석).
당국은 원래 금년도 「양특회계」에 32억4천만원을 계상, 보리 78만2천석(정부매입 50만7천석, 양비교환 14만5천석, 농지세 13만석)을 수납할 계획이었으나 전례없는 풍작으로 보다많은 수납량 확보를 위한 자금증액이 불가피해졌다.
당초 예정된 정부수납으론 지금의 보리쌀 한가마값(76.5「킬로」들이) 평균 1천7,8백원선(산지)의 유지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벌써 서울에서 햇보리쌀이 한가마에 2천1백50원으로 햇곡이 나돌기 전보다 2백원이 떨어졌고- 또 20일 현재 산지의 보리쌀은 ▲진주 1천5백원 ▲김해 1천6백50원 ▲김제 1천5백80원 ▲정읍 1천5백90원, 도시에 비겨 6백원 내외의 차를 시현-본격적인 출회기가 아직 아닌데도 이미 작년 이맘대에 비해 한가마에 3백원꼴(산지)이 떨어지고 있다.
이러한 생산비와 소비지간의 가격차이를 좁히고 농가의 생산비 이상을 기축으로한 수확기와 단경기의 곡가평형화를 기할 수 있는 양곡정책이 해마다 강조되어왔지만 올여름에도 하곡풍년-보리값폭락-풍년기근이라는 악순환에 걸린채 심각한 맥가 고민속을 헤매고 있는 판국.
올해 추정되는 농가의 보리 상품화율은 총생산량의 30%인 3백60만석-이를 표본조사에 의한 이른바 신통계로 집계된 생산량 1천8백만석을 놓고보면 5백40만석. 그래서 35억원의 추가재원을 마련하여 계획된 78만2천석외에 96만석의 「맥담」을 처음 시도하게 된 것이다.

<올 보리 상품화율 총 생산량의 30%>
또 수출 48만석과 그밖의 소비증대로 18만석 등 도합 2백40여만석을 정부가 수납, 조작하여 보리값의 적정선을 유지할 계획이지만 이 두가지가 모두 실현성이 희박한 것을 보면 줄잡아 2백만석의 보리는 헐값의 시장방매를 면치 못하리라는 전망-.
특히 올 보리의 겉보리 한가마(50「킬로」들이) 추정생산비인 1천4백원엔 외면한 채, 정부수납량 78만2천석을 작년가격인 한가마 1천5원, 맥담은 9백원(2등품 기준=미정)으로 생산비 보다 4백50원이나 낮게 책정하고 있다.

<맥담 시가 이상은 도시가 안오를듯>
맥담에는 시장가 유지 이외에 농번기로 접어든 농촌의 현금수요를 「커버」해주려는 뜻도 있기 때문에 농촌은 당장 현금을 얻는 손쉬운 방법으로 맥담에 의존하고 또 정부는 싼값으로 보리를 쉽게 사들이는 편법으로 안성마춤이긴 하다.
앞으로 보리상품화율에 견주어 시장시세가 맥담가 이상 오르리라고 기대할 수 없고 따라서 일정기간의 이자, 보관료 등이 가산된 맥담을 농민들은 다시 찾지 못할테고-.
결국 정부는 농산물가격유지법에 따라 이를 인수케 되는 만큼 맥담은 작년에 있던 정부매입으로 귀착되며 현재 그나마 가장 높은 값으로 결정, 경제각의에 상정된 맥담가격 9백원은 작년정부매입가인 1천5원보다 자그마치 1백5원이나 싸게 사들이는 결과가 된다.

<이번 가을에도 같은 파동 예상>
물론 최소한의 생산비를 보장하는 수준에서 곡가를 안정시키는데는 없는 나라살림의 고민이 있긴 하다.
따라서 이번 35억원의 추가재원을 마련하는 일이 관계당국간에 재정안정계획·집행을 에워싼 승강이로 난관을 겪고 있다.
그런데 또하나의 적정 곡가유지의 「시한폭탄」은 올가을 추곡수납을 전후, 아무래도 폭발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올해 재정안정계획에서 양특회계는 90억1천4백만원을 계상, 1백59만7천석(정부매입 24만3천석, 양비 69만4천석, 농지세 66만석) 이외에 미담 50만석이 계획되고 있다.

<곡가 소동나기 전 안정계획 수정을>
이로 미루어 올해 햇곡이 나돌기전에 수납규모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재정안정계획 수정이 앞서지 않고는 작년과 같은 소동 이상의 사태가 빚어질 수도 있다.
작년의 추곡수매량이 2천4백만석인데 금년 예정수확량은 2천8백만석으로 4백만석의 증수, 지난해 수납자금의 부족으로 빚어졌던 곡가하락 소동은 이런 점으로도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지상목표인 식량의 증산-해결해야할 생산비 보장-빈약한 정부재정-이 틈바구니에서 아직도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양정인 것이다.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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