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절벽 내몰리는 20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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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구직 중인 김모(29)씨는 3년 전 자영업을 하던 부모님이 본인의 이름으로 대출을 한 뒤 갚지 못하자 3000만원의 빚을 떠안았다. 당시 대학생이던 김씨는 3~4개의 아르바이트를 동시에 하며 대출 이자를 갚아 나갔지만 역부족이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학업을 중단하지 않았다. 대학 졸업은 해야 좋은 곳에 취직해 빚을 갚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때문이었다. 하지만 졸업 후 뛰어든 취업 전선에서 그의 희망은 산산조각이 났다.

원서를 내는 곳마다 ‘낙방’ 통지만 돌아왔다. 그는 “연체 등 채무 상태를 파악한 기업이 받아주려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그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있다. 그는 “도저히 (빚에서) 빠져나갈 탈출구가 없다. 미래를 생각해도 막막하기만 하다”며 한숨을 지었다.

 20대 채무자가 ‘금융절벽’으로 내몰리고 있다. 빚 때문에 취직이 어렵고, 취직이 되지 않으니 빚을 갚을 수 없는 악순환에 빠진 20대가 크게 늘고 있다.

 2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 기준으로 20대 채무자의 총 대출액은 9조원에 이르고 채무불이행자는 1만9520명에 달한다.

 이런 사정은 올해에도 악화될 전망이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대학생 76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열 명 중 넷(42%)이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받을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 중 70%는 이미 직전 학기에도 학자금 대출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채무를 감당하지 못해 개인회생이나 워크아웃 등을 신청하는 20대도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 대한법률구조공단을 통해 개인회생을 신청한 20대는 전년보다 50% 늘어난 210명에 달했다.

 그럼에도 이들을 구제할 회생제도의 벽은 높기만 하다. 상환능력이 없는 20대 채무자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법원의 개인회생 제도와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워크아웃 제도, 신용회복기금의 채무재조정 제도와 전환대출 상품 ‘바꿔드림론’ 등이 있다. 하지만 모두 채무자가 일정 소득이 있어야 신청할 수 있다.

개인회생이나 워크아웃의 경우 매월 소득이 적어도 1인 최저생계비 85만원 이상이어야 한다. ‘바꿔드림론’은 연체 중인 사람은 신청할 수 없다. 신용회복기금 관계자는 “직장생활을 시작하지도 않은 20대에게 어려운 조건일 수 있다는 건 알지만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줄이려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법원에 개인파산을 신청해도 20대 채무자의 인가율은 낮다. ‘무슨 일이든 해서 소득을 낼 수 있는 세대’라는 이유에서다. 서울중앙지법 측은 “20대 신청자는 소득 능력 면에서 다른 세대보다 기준이 까다로울 수 있다”고 밝혔다.

 구제를 받지 못한 20대 빚쟁이에겐 미래가 없다. ‘부채 꼬리표’가 취업마저 가로막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기업이 ‘채무불이행’ 기록이 있는 지원자를 뽑지 않는다. 한 기업의 인사 담당자는 “채무 압박이 큰 지원자가 직무 능력이 좋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결국 대다수의 20대 채무자는 아르바이트나 불안정한 계약직을 전전할 수밖에 없다. 김순영 한림국제대학원대 정치경영연구소 교수는 “정책 당국이 20대 ‘생계형’ 채무자에 대해 취업 지원을 하거나 안정 고용이 될 때까지 부채를 제도적으로 유예해주는 등 다양한 해결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성인 홍익대(경제학) 교수는 “20대 젊은이들은 나라의 미래 성장동력이기 때문에 더욱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개인회생 상담 전문인 이현주 법률사무소의 홍진연 실장은 “20대의 경우 연체가 되면 우왕좌왕 돌려막기를 하다 빚을 더욱 늘리는 경우가 많다”며 “이를 예방하기 위해선 이들을 위한 신용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상지·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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