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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이틀이 멀다하고 「○○○대인전주○씨이노환…자이고부」하고 신문에 나는, 널리 사해동포를 향한 부고를 어떻게 고쳐볼 수 없을까. 개화에 근대화를 거듭해서도 가시지 않는 것은 가족제도와 효라는 전통의 유산이다. 어차피 가족이 흩어져선 더욱 살기 힘들고 효도하는 것이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나무랄 것이 못되지만 부고에 나타나는 전통은 낭비가 반 겉치레가 반이다.
개별적으로 부고장을 돌리는 것보다는 신문에 실려 버리는 것이 더욱 간편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생시에 출세도 하고, 서너 가지 훌륭한 직함을 지녔던 사람의 경우는 유족이 가만히 있어도 고인이 관계했던 기관이며 업체에서 공비로 부고를 내주는 편리한 풍습도 있다. 그러나 부고가 이런 정도에 이르면 가족제도니 효도니 하는 것은 온데 간데가 없고 신문 활자를 통한 시위가 되고 만다.
신문에 부고가 실리는 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도 그렇다. 그러나 일본 것은 적어도 누구나 읽어서 알 수 있는 일상용어로 박혀 나오지만 우리 것은 으레 고색 창연한 한문으로엮어낸다. 한문소양이 아직도 유복과 유식의 척도가 되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고전적인 보고일수록 고인의 아들·딸·사위들이 모조리 미국 유학 중이어서 장례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초현대적 사실을 함께 전해 주는 법. 어떤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릴 때, 그 유족들의 현황을 함께 광고할 필요가 있는가. 그것은 낭비나 허영을 넘어선, 방만이 아닌가.
사회의 명랑화를 위해선 죽음을 광고하는 부고보다는 차라리 출생이나 결혼을 알리는 광고가 신문지면에 실리는 것이 더 좋다. 그러나 출생·결혼·사망 따위 인생사는 결국 그 당사자와 그와 친근한 소수의 가족·친지의 관심사 일뿐 가뜩이나 번거로운 세속에 번잡을 더하는 것이 허용될 순 없다. 당사자가 명망 있는 공인인 경우 출생에서 사망에 이르는 그의 이적이 어김없이 세상에 알려 지는 길은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가. 국민장·사회장 등의 광고를 포함한 일체의 부고를 합리화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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