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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세상탐사] 이웃의 개는 생명인가, 물건인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07호 31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곤 하는 게 인간 세상이다. 하지만 가끔은 정말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지 묻고 싶어질 때가 있다. 지난주 경기도 용인에서 일어난 ‘불 붙은 개’ 사건이 그 경우다. 현장의 폐쇄회로TV(CCTV)엔 온몸에 불이 붙은 개가 쏜살같이 창고로 뛰어가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겼다.

“개 몸에 불을 붙인 사람을 제보해 달라”며 현상금 300만원을 내건 동물사랑실천협회에 전화를 걸어봤다. “전화는 여러 통 왔는데 결정적인 제보는 아직 없습니다.” 협회 측은 “그 정도로 불이 붙으려면 인화 물질을 끼얹어야 가능하다”며 “동물을 잔인하게 학대한 범인을 반드시 잡아낼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동물학대는 어떻게 처벌할 수 있을까. 우리 법체계에서 동물이 어떤 지위를 갖는지부터 살펴보자. 우선 민법상으로는 물건이다. 물건은 토지 및 그 정착물인 ‘부동산’과 ‘동산’으로 나뉘는데 동물은 부동산이 아니므로 동산에 해당한다.

동물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 법적으로 쓰레기로 취급된다. 폐기물관리법 제2조에선 동물의 사체를 폐기물에 포함시키고 있다. 법 규정으로는 ‘사람의 생활이나 사업 활동에 필요하지 아니하게 된 물질’일 뿐이다. 이에 따라 아무리 10여 년을 함께 살아온 반려동물이라 해도 야산이나 공터 등에 묻는 것은 불법이다. 동물 전용 납골당을 이용하지 않는다면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려야 한다.

이렇게 동물을 철저히 물건으로 보는 관점은 형법에서도 그대로 관철된다. 남의 개를 학대한 경우 형법에 따르면 타인의 재물을 망가뜨린 손괴죄가 된다. 동물보호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이 법은 동물을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거나 ^공개된 장소나 같은 종류의 다른 동물이 보는 앞에서 죽이거나 ^도구·약물을 사용해 상해를 입히는 등의 행위를 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처벌 기준이 모호해 빠져나갈 구멍이 많은 데다 고의란 게 명백하지 않으면 처벌하기도 쉽지 않다.

승용차에 개를 매달고 달렸다는 논란에 휩싸였던 ‘악마 에쿠스’ 사건의 경우 학대의 고의를 뒷받침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또 소값 파동에 항의하기 위해 자신이 기르던 소 30여 마리를 굶겨 죽인 ‘순창 소 아사’ 사건 역시 불기소 처리됐다. 의도적으로 학대했다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의 사건 처리는 따지고 보면 동물을 물건으로 보는 전체 법 체계의 시각과 무관치 않다. “동물 좀 죽였다고 해서 형사처벌까지 하는 것은 심하지 않느냐”는 사고다. 동물보호법 규정만 강화한다고 해서 해결될 성질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문제는 바로 우리 인간 자신에게 있다. 반려동물과 생활하는 인구가 1000만 명(세대 기준 400만 가구)에 이르지만 매년 10만 마리의 동물들이 유기되고 있다. 기르기 싫어졌다고, 병에 걸렸다고, 변을 못 가린다고, 덩치가 커졌다고 너무 쉽게 내다버린다. 올해 반려동물 등록제가 전면 시행됨에 따라 등록을 피해 유기되는 동물이 더 늘어날 것이란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그러면서도 TV와 인터넷에 동물 학대 장면이 나오면 흥분하고 치를 떠는 게 우리의 모습이다. 류여해 사법교육원 교수는 동물도 생명이란 인식을 심기 위해 형법 자체에 동물학대 처벌 조항을 넣을 것을 제안한다.

“독일은 1990년 민법 개정을 통해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Tiere sind keine Sachen)’는 조문을 신설했습니다. 민법까지 개정하지는 못하더라도 동물의 법률적 지위를 명확하게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기 소유, 타인 소유, 주인이 없는 경우로 나눠 동물학대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을 형법 조문에 넣는 겁니다.”

청소년기에 동물학대 경험이 있는 사람은 가정 폭력이나 강간·살인 등 강력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생명 경시는 작은 것부터 시작된다. 연쇄살인범들의 범행도 동물을 잔인하게 죽이는 것에서 싹튼다. 이 귀한 지면에 정치나 경제·사회 같은 사람 얘기가 아니라 동물학대 문제를 쓰는 이유는 그래서다. 동물 역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지구별의 동료 생명체라는 생각을 갖지 않는 한 인간의 생명도 존중받기 어렵다.

당신이 불 붙은 개를 보고 분노했다면 그것은 그 고통이 머릿속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묻고 싶다. 당신이 기르고 있는, 당신 이웃에 사는 개와 고양이는 생명인가, 물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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