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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산 로즈 남미 커피향 살짝 섞어볼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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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7호 14면

아닉구딸, 르 라보, 조 말론, 펜할리곤스, 딥티크, 크리드…. 요즘 백화점 향수 코너를 돌다 보면 생소한 이름이 자주 눈에 띈다. 이들의 정체는 ‘니치 퍼퓸’이다. 나만의 특별한 향을 갖고 싶은 이들의 빈틈을 노린다는 의미에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나만의 향 ‘니치 퍼퓸’의 세계

100여 년이 넘는 브랜드가 대다수이지만 이름이 낯선 데는 이유가 있다. 소수를 공략하는 만큼 대대적인 광고·홍보를 하지 않는 것. 파는 곳도 제한적이다. 유럽에서는 백화점이 아닌 단독매장 형태를 유지한다. 오죽하면 향수재단(The Fragrance Foundation·FiFi)에선 니치 퍼퓸의 기준을 소매 유통채널 수로 구분했을까. 국내의 경우 3~4년 전부터 편집매장에서 주로 판매되다 지난해 백화점에 정식 매장이 생기기 시작했다. 서울 청담동 갤러리아 백화점은 현재 8개가 니치 퍼퓸 매장으로 구성됐다. 이 중엔 샤넬·크리스챤 디올·조르지오 아르마니 등 일부 디자이너 브랜드 중에 니치 퍼퓸을 선보이는 곳도 있다. 단 화장품 매장이 아닌 부티크에서 판매하는 별도 라인이다. 각각 레 엑스클루시브, 라 컬렉션, 프리베로 불리는 프리미엄급 제품이다.

니치 퍼퓸은 희소성에 초점을 두는 만큼 일반 향수와 차이를 둔다. 밀라노의 향수 전문가이자 컨설턴트인 마리안 멘데스가 이를 몇 가지로 정리했다. 일단 천연 에센스를 사용하고, 독보적 향료를 고집한다는 것. 특히 특정 지역을 강조한다. ‘페퍼콘(말린 후추열매), 터키산 로즈, 뉴질랜드 해변에서 채집된 앰버그리스(용현향: 향유고래에서 얻는 향료의 원료)’를 썼다거나 ‘시칠리아산 자몽 에센스와 남아메리카의 로부스타 커피 향의 조합’으로 만들어 냈다는 식의 설명이 딱 그런 예다.

‘센티폴리아 장미 3000㎏을 증류시켜 에센스 1㎏를 뽑아낸다’는 추출방식 역시 ‘한땀 한땀’ 공들이며 만드는 명품의 전형이다. 보통 향수에서처럼 시트러스·우디·플로럴 등 기본 베이스 노트를 새롭게 조합하는 특수 기법을 앞다퉈 내세운다. 요리로 비유하자면 최고의 식재로 새로운 소스를 개발한다는 셈. 그만큼 가격은 비싸다. 125mL 기준 10만~30만원대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국내에서 니치 퍼퓸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갤러리아 백화점의 경우 지난해 화장품 매출이 3% 증가한 데 비해 니치 퍼퓸은 25%나 늘었다. 화장품 대비 향수 시장 규모가 5%에 불과한 국내 시장에서 새로운 블루 오션인 셈. 매니어층이 형성되면서 LG생활건강은 향수 시장에 본격 진출을 선언했다.

불황에도 고가 향수가 뜨는 배경에는 이견이 별로 없다. 바로 “요즘 트렌드는 트렌드를 따르지 않는 것이다”는 말이 답을 대신한다. 남들과 똑같은 제품을 쓰기 싫은 소비 심리, 과시는 하되 브랜드를 직접적으로 내세우고 싶어하지 않는 은근한 우월감이 작용한다는 것. 패션 리더들 사이에선 가방이나 옷을 로고가 드러나는 대중적 명품을 지양하고, 웬만한 사람들은 들어본 적도 없는 물건들을 선호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편집매장 ‘10꼬르소꼬모 서울’의 송애다 과장은 “요즘엔 생소한 브랜드일수록 관심을 갖는 고객이 많아졌다”면서 “향수도 개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액세서리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니치 퍼퓸은 ‘스몰 럭셔리’의 개념으로 인식된다. 옷이나 가방처럼 최고급 제품에 수백만원을 써야 하는 것과 달리 향수는 몇십만원대로 명품을 갖는다는 심리적 만족감이 크다는 것. 작은 물건으로 최고급 취향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이는 불황일수록 특정 항목에 대해서만 고급품을 지향하는 ‘로케팅 소비’의 행태가 그대로 나타난 것으로도 해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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