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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인 직접 발표 … 낌새 못 챈 인수위 사람들도 깜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새 정부의 첫 국무총리 후보자를 발표하기 5분 전인 24일 오후 1시55분.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자회견장엔 김용준 인수위원장이 혼자 단상 위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양복 호주머니 속에서 종이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총리 후보자가 누구인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나와 있는 걸 본 인수위 주변에선 “혹시 김 위원장이 총리가 되는 거 아니냐”는 수군거림이 나오기 시작했다. 5분 뒤 박 당선인이 등장했다. 그는 “저와 함께 새 정부를 이끌어 갈 총리 후보자는…”이라고 한 뒤 잠깐 말을 끊었다. 그러곤 “현재 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을 맡고 계시는 분”이라며 꽁꽁 숨겨 왔던 총리 카드를 공개했다. 김 위원장이 읽고 있던 종이는 미리 적어 놓은 소감문이었다.

 인수위 관계자들과 취재진 사이에선 탄성이 흘러나왔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걸 보여 준 인선이었다. 그만큼 박 당선인이 철통보안을 유지한 까닭이다. 물론 김 위원장도 총리 후보군에 포함될 것이란 관측도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새 정부 첫 총리 인선인 데다 박 당선인이 강조한 국민대통합 컨셉트 등으로 미뤄 볼 때 새로운 얼굴이 나올 것이란 관측이 유력했다. 김능환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장, 조무제 전 대법관 등이 유력 후보로 부상한 이유다. 그러나 인수위 주변의 이런 예상은 결국 빗나갔다.

 이날 총리 후보자가 발표될 것이란 인수위 측의 통보는 오전 10시 문자메시지로 이뤄졌다. 이후 오후 2시 발표 때까지 4시간 동안 박 당선인의 핵심 측근들이 보인 반응은 비슷했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오후 2시에 발표하는 걸 어떻게 알았느냐”며 “여기(당)에는 통보가 안 됐다. 인사 같은 건 전혀, 여기랑은 상의도 안 하고 통보도 안 해 준다”고 했다. 오랜 기간 박 당선인의 대변인 역할을 해 왔던 이정현 당선인 비서실 정무팀장도 “나도 누군지 모른다. 진짜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유일호 당선인 비서실장은 “나도 궁금해 죽겠다”고 했다. 당과 비서실 핵심 관계자들조차 총리 후보자에 대해 ‘깜깜이’인 듯이 반응했다.

 그간 박 당선인은 공식 일정 외에는 서울 삼성동 자택에 머물면서 총리 발표시기를 저울질했다. 박 당선인 측은 보안 유지를 위해 5년 전 인수위와 달리 청와대와 행정안전부 등 정부기관에 인사자료도 요구하지 않았다고 한다. 최외출 전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기획조정특보나 이재만 전 보좌관 등 극히 일부의 실무진을 제외하곤 박 당선인의 의중을 알 수 없었던 셈이다. 국가기관의 공식자료 대신 자체 검증을 하다 보니 총리 후보자로 검토됐던 사람도 이미 검증된 인사로 좁혀졌을 것으로 보인다. 그 바람에 헌법재판소장 출신에 이미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인수위원장으로 두 번이나 손발을 맞춘 김 후보자 카드가 인선에 부상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당초 박 당선인은 이날 오후 2시 대통령취임준비위원들에게 임명장을 줄 예정이었다. 하지만 초대 총리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고조되자 일정을 바꿔 임명장 수여식을 한 시간 늦추고 총리 후보자를 공개했다.

 박 당선인은 김 후보자로 결심을 굳히기 전에 몇몇 인사에게 총리직을 맡아 달라고 제안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중 한 명으로 거론된 사람이 김능환 전 위원장이다. 김 전 위원장은 22일 본지 기자와 만나 총리 제안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허허, 지금 일진광풍이 불어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총리 제안이 있었다는 걸 부인하지 않은 것이다.

 2008년 당시 이명박 당선인에 이어 박 당선인도 첫 총리 후보자를 직접 발표하면서 중요 인사를 대통령 당선인이 직접 발표하는 방식이 관례화되는 양상이다. 2003년 당시 노무현 당선인은 총리부터 장관들을 직접 소개하며 발탁 이유를 설명한 적도 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선 중요 인선을 발표할 때 대통령이 직접 후보자를 소개하고 있다. 이날 인선이 오후 2시에 발표되면서 그간 18대 대통령 인수위가 중요 발표를 오후 4시에 하던 ‘4시의 법칙’도 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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