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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에게 밝은 내일을〉(5)-어지러운 환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007「제임즈·본드」가 일으킨 선풍은 어린이의 세계에까지도 미쳤다.「베네타」권총을 비껴 든「본드」의 당당한(?) 모습이 들어오자 뒤 따라 003, OSS 117, 살인번호, 지령번호… 허황한 제목의 영화광고들이 길목마다 판을 쳤다. 만화가게는 재빨리 이 광고수보다 더 많은「드릴러」 만화들을 즐비하게 진열해 놓고 어린이들을 불러 들였다.
「빵빵7」「로이스카888」「지령번호빵08」등등 괴물 같은 이름을 붙여서-.폭력배가 주먹자랑 하는 처절한 폭행 현장, 금쩍한 살인현장,「누드·쇼」의 선정적인 광경, 예의 없이 펼쳐지는 영화나 만화 속에서 어린것들은「남을 때려 넘기는 것이 강자이고 사람 목숨을 파리처럼 여기는 주인공이 영웅」임을 배워간다.
중학교2학년생의 이야기가 있다. 극장을 나오면서 김 (11)군은 흥분하고 있있다.
「0011」이란 괴상한 번호의 주인공이 여자를 묘하게 다루는가 하면, 치고 받고하던 모습에 감격(?)한 것이 었다. 그는 당징 이모의 농을 뒤져 5만원어치의 패물을 훔쳐내고, 사창가로 달려가 주인공을 상상하며 여자한테 접근했다. 경찰에 적발되어 부모에게 끌려가면서도 김군은『재미있었다』고 생글벙글-.
얼마전 J경찰서에 강도 신고가 들어 왔었다. 신고한 사람은 뜻 밖에드 열한살짜리 L군. 경찰이 발칵 뒤집혀 수사해본 즉 만화를 보고 「드릴」을 느끼고 싶었던 L군이 꾸며 낸거짓 신고였다. 만화를 보고 집을 나갔던 J (11)양도 경찰에 잡혀 추궁을 받자 『악당한테 유괴 당했었지요. 골방에 갇혀서 사람 죽이는 것도 보고요. 나도 도둑질을 시켜서 시계를 훔쳤어요. 그러다가 매를 맞고 도망쳐 나왔어요』하고 명랑하게 진술했다.
노련한 수사계장영감도 J양의 말을 곧이 듣고 형사대를 풀어 현장을 찾다 못해 골탕만 먹었다.
만화가게에서「텔리비젼」을 관람하던 열한살짜리가 자리다툼 때문에 친구를 주머니칼로 찔렀다. 바로「프로·례슬러」가 피투성이의 결투를 벌이던 장면 앞에서였다.
이렇게 범죄· 모험· 애욕을 주제로 한 「매스·콤」의 난무 속에서 어린이들은 변질 해가고 있다. 소년범죄의 23「퍼센트」를 차지하는 강력범과 성범죄의 수법이 ⓛ포악하고②저연령화하는가 하면③학생층과 부유층의 자제에게 옮아가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앞에서 지적한 유해환경들에 닮아가기 때문이다. 선생님도 아빠도 안중에 없어 『이 새끼야, 저 새끼야』마구 욕설을 퍼 붓던 어느 국민학교 3학년생의 정신진단은 언어판단의 장애였다. 선생님은 존경하라고 가르치던 「높은어른」들이 아빠의 입을 통해서는 「도둑놈」으로 뒤 바뀐데서 꼬마의 판단력은 갈피를 잃은 것이었다.
극장에서 「트위스트」연주회가 한창 어우러질 무렵 흥에겨운 10대의 까까머리들이 무대위로 뛰어올라 꽈배기 몸부림을 치던 광경,「크리스머스·이브」를 즐기겠다고 서울로 올라와 하숙방에서 혼숙하던 부산학생들의 탈선, 「아동복리」를 외면한 어른들의 향략과 언어행동을·본 받아 총명을 잃은 때문이었다.
『10년 후에 만나자』는 쪽지를남기고 가출했던 K(11·국민학교4년)양은 『공부 잘하는 애보다는 엄마가 학교에 자주나오는 애가 왜 반장을 하느냐?』고 선생님들에게 항의했다. 「돈받고 글을파는 거래소]로 전락한 학교환경도 어린이들을 멍들게 할 뿐이다.
가정과 학교, 거리마다 어지럽게 내 닫는 세류.『나쁜사람 많으면 미분해 버려라. 그러면 착한 것만 남는다. 착한영은 어떻게 할까? 적분해야치. 그러면 착한 것만 남아서 크게 되지.전쟁도 싸움도 없다』세살 박이 신동 김옹응군의 눈에 비친 어른들 세계도 이토륵 혼탁하지 않은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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