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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경제로 해결 안 되는 것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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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기현
서울대 교수·철학과

이번 정부조직 개편안의 핵심은 경제와 과학기술의 강화로 요약된다. 교육과학기술부의 과학기술 분야와 지식경제부의 응용연구개발 분야를 떼어내고 기존의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원자력안전위원회를 포함시켜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해 과학기술 분야의 강력한 컨트롤타워를 구성하는 것이 쌍두마차의 한 축이다. 다른 한 축은 기획재정부 장관을 부총리로 격상시켜 모든 부서의 경제 관련 정책을 총괄하는 또 하나의 강력한 컨트롤타워를 만드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경제적 경쟁력 향상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바야흐로 경제일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의 틀로는 치유할 수 없는 신음이 우리 사회의 도처에서 들려오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자. 노인을 가장 잘 섬기던 나라에서 순식간에 노인 자살률과 그 증가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다. 청소년 자살률 역시 가장 높고 생활만족도는 최저이며 학교폭력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출산율은 급격히 저하되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 사회로 치닫고 있으며, 살인·강도·강간 같은 강력범죄가 2000년에서 2010년까지 10년 사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는 통계자료도 있다. 경제적 요소가 이들 문제에 일정 부분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되지만, 세계에서 유례없는 고속의 산업화와 그에 따른 경쟁구도의 도입에 의한 정신적 피폐가 문제의 저변에 놓여 있음을 가벼이 보아서도 안 된다. 경제가 좋아지면 문제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편협한 오만이다. 오히려 이들 문제는 우리 사회를 빠르게 잠식해 표면으로 떠오르면서 사회의 동력을 약화시키고 있으며, 결국에는 경제동력에도 영향을 미칠 것임은 불 보듯 뻔하다.

 진정한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바란다면 우리는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으로 잘 사는 것인지를 다시 생각하고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며 서로를 배려하는 사회를 향한 걸음마를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한다. 우선 교육이 달라져야 한다. 타인을 존중하는 건강한 시민의식, 더 나아가 공생의 가치를 구현하는 공동체 의식은 치열한 입시경쟁의 적자생존 문화 속에서 자라날 수 없다.

 경제는 중요하지만 그런 공약에만 주목해선 안 된다. “공동체 정신을 길러주는 협력학습 기회를 확대하고 실천 중심의 인성교육 내용과 방법을 개발해 공급하겠다”는 공약이 의례적인 허언이 되지 않도록 챙겨야 한다.

 다음으로 과학기술 분야와 더불어 인간과 사회를 연구하는 인문학·사회과학을 진흥하기 위한 정책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과학과 기술 관련 위원회·조직에 비교할 때 인간과 사회를 연구하는 인문사회 분야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대통령 직속으로 과학기술 분야의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국가원자력안전위원회가 있지만 인문사회 분야에는 아무런 위원회도 설치되어 있지 않다. 수없이 많은 과학·산업·경제 분야의 국책연구기관이 있으나 경제학 이외의 사회과학과 인문 분야의 연구기관은 손에 꼽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건강한 사회를 위한 효율적 미래 비전을 만들기 위해서는 상황이 달라져야 한다.

 활력 있는 사회를 향한 가치를 창출하는 작업은 하루 이틀 사이에 이루어질 수 없으며 오랜 노력과 희생을 요한다. 새로운 정부의 임기 내에 가시적 효과를 낼 수 없는 일이라고 뒤로 밀어두었다가는 사회동력을 회복할 수 없는 시점에 이를지도 모른다. 필요한 물질을 제공하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지도자는 인정을 받지만 아픔을 보듬고 치유하는 지도자는 감동을 준다. 인정과 감동이 함께 깃든 박수가 울리는 멋진 날을 우리는 맞을 수 있을까.

김기현 서울대 교수·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