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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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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워커·힐]로 싹이 트고, 한·일 국교재개로 만발한 관광의 꽃은 이제 수입가경. 김춘수씨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제해서 [6월에]라 했다. [빈 꽃병에 꽃을 꽂으면, 밝아오는 실내의 그 가장자리만큼, 아내여, 당신의 눈과 두 볼은 밝아오는가.] 외화에 굶주린 우리꽃병에 관광의 꽃이 꽂혀서, 한국의 눈과 두 볼은 과연 얼마나 밝아오고 있는가.
자국민에게는 내핍과 저축을 강요하면서, 외채를 떨어뜨리고 가는 외국관광객에게는 가능한 모든 편의와 특권을 부여하는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그러기에 외국 관광객들을 위해서 통금을 풀어주고, 엄청난 주택난의 해결에 앞서서 [매머드] 관광 [호텔] 건축을 서둔대도 놀라거나 야속하게 생각할 것은 없다. 그러나 [달러] 손님들이 가득 가득 차있어야 하고, 간혹 한꺼번에 수 백명씩 관광객이 쏟아져 들어오면 객실이 부족하다고 법석을 떠는 우리 관광 시설이, 점점 돈 많은 집안 손님들의 고급사교장이 되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빈 꽃병에 외화의 꽃을 꽂으러 찾아오는 관광객들 중엔 꽃을 꽂아 주기는커녕 꽃병마저 앗아가 버리는 장사꾼들이 있지 않은가. 최근 한달 동안 만해도 암시장에서 일본 돈을 바꾸다가 들키고는 줄행랑을 논 사람이 있었고, 수상한 [카메라] 행각을 하다가 말썽을 일으킨 자가 있었다. 바로 어제는 일인 관광안내인과 여행사를 경영하는 한인 한사람이 보물급이 낀 수많은 문화재를 실어가려다가 입건되었다. 한 손으론 뺏어갔던 문화재를 돌려주고 다른 손으론 동급의 다른 보물을 사가고 하는 폼이 무슨 문화교류 운동같이 보인다. 석정이라는 일인청년이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를 선의의 관광객이라고 볼 수는 없다.
문제된 세 일인들은 실상 뽕만 따기는 싱거우니까 임도 한 번 보고 가자는 순진한 속셈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달러]를 싸들고 찾아드는 귀한 손님들에게 [달러]로 살 수 있는 것과 살 수 없는 것을 미리 알려 주어야하지 않는가. 주의사항까지 기록해서 외국의 [베데커]나 [블루·가이드]와 같은 권위있는 관광안내서를 서둘러 내야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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