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뒤엉킨 '욕망의 실타래' 독특한 포맷으로 관통

중앙일보

입력

영화 '아모레스 페로스'는 낯설다. 국내에서 거의 볼 기회가 없는 멕시코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렇고 제목 또한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 스페인어로 '개 같은 사랑'이라는 뜻이다. 도발적이다.

그런데 영화가 20세기가 창조해낸 종합예술이라는 점에 동의한다면 '아모레스 페로스'는 바로 그런 작품이다. 긴박한 영상과 비트 강한 음악, TV 다큐멘터리의 사실성과 CF광고의 속도감을 고루 갖추고 있다.

또 이 요소들이 이가 잘 맞는 톱니바퀴처럼 적재적소에서 효과를 발휘해 진득한 여운을 남긴다. 온갖 욕망이 득실거리는 멕시코시티의 오늘날을 파헤치는 메시지마저 녹녹하지 않다.

사실 '아모레스 페로스'는 지난해 세계 영화제의 단골 초청작이었다.칸.도쿄.상파울로.시카고.오슬로.에딘버러.몬트리올 등을 순례했다. 올해에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으나 '와호장룡'에게 영예를 넘겼으며 전주영화제에서도 상영됐다.

라디오 DJ.TV쇼 진행자.연극 연출 등 다양한 경력을 쌓은 멕시코의 신인감독인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는 데뷔작인 이 영화 한편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일부에선 1990년대 영화 미학의 한줄기를 만들었던 '저수지의 개들'의 퀜틴 타란티노에 비교하기도 한다.

'아모레스 페로스'는 세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됐다. 각기 다른 얘기들이 전후좌우로 연결되며 하나의 완성체를 만들어낸다. 1부에 슬쩍슬쩍 비치는 이미지가 2부에 연결되고 3부에서 가닥을 잡는다.

그렇다고 최근 개봉했던 '메멘토' 같은 퍼즐 맞추기 영화는 아니다. 각기 다른 신분과 출신의 사람들이 외쳐대는 현대도시의 거대한 불협화음을 스크린에 투사하기 위해 선택한 감독의 전략일 뿐이다.

'아모레스 페레스'의 모티브는 크게 두 가지. 제목에서 사용된 개와 돌발적인 교통사고다. 세 개의 에피소드는 이 개와 교통사고를 중심으로 회전하며 멕시코의 어제와 오늘을 촘촘하게 엮어낸다. 한때 혁명의 열기로 들끓었으나 지금은 산업화의 경쟁논리가 지배하는 멕시코의 자화상을 만화경처럼 응시하고 있다.

투견장에서 번 돈을 가지고 형수와 함께 도망가려다 실패하는 내용을 담은 1부(옥타비오와 수잔나) , 유부남인 출판사 사장과 동거를 하다 다리를 잃는 유명 모델을 그린 2부(다니엘과 발레리아) , 공산주의 게릴라에서 청부 살인업자로 전락한 전직 대학교수의 불우한 인생을 조망한 3부(엘 치보와 마루) 순으로 진행된다.

무지막지한 투견꾼 일당으로부터 도망치던 가난한 청년 옥타니오의 자동차와 장미빛 미래를 기약하던 일급 모델 발레리아의 스포츠카가 충돌하면서 얘기가 접점을 찾고, 그 사고 현장을 청부 살인업자 엘 치보가 목격하면서 플롯이 정교해진다.

집안에서 기르던 개를 투견장에 보낸 옥타비오에게 개가 생존의 도구라면, 톡 건드리면 이내 쓰러질 것 같은 애완견을 애지중지하는 발레리아에게 개는 자신의 지위를 드러내는 장식품. 반면 거리에서 주운 개들과 함께 너저분하게 살아가는 엘 치보에게 개는 고독을 달래는 친구 비슷한 존재다.

감독은 이처럼 각기 처지가 다른 인물들의 좌절된 욕망을 개라는 평범한 소재를 통해 재기있게 그려낸다.

핸드헬드 카메라의 흔들리는 영상(1부) , 스릴러 같은 긴장된 화면(2부) , 먼 거리서 잡은 좌초한 혁명가(3부) 등 내용과 형식의 일치도 수준급이다. 18세 관람가. 17일 개봉.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