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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동인「정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다난한 환경과 겹치는 장애를 헤쳐오며…우리의 푸른 의욕을 여기보여 드립니다』-.
지난봄 청담동인들은 읍내에서 처음으로 동인전을 열었다. 현광등, 눈부신 조명이 쬐는 다방 세 벽을 간신히 빌수 있었다. 출품작은 40호 크기로 21점.『이게 문 그림이꼬!』하는 추상화도 그속엔 몇점 들어있었다.「봄밤」「청산꽃」「속삭임」「봄의유희」등 화면마다엔 대부분 향토의 서정이 무르익어 포근한 분위기를 이루었다.
◇"침체탈피 좀 꿈틀거리자|상은오로지「작품」이 받아야…"
『침체하지 말고 뭣좀 꿈틀거리자』는 청년들의 기지개가 이 동인회의 동기였다. 5인은 처음부터 굳게 약속했다.『순수에서 시작해서 순수에서 끝내자』그말의 뜻은『재주 부리는 그림』을 그리지 말것, 상은 오로지 작품으로 하여금 받게 할것. 그러니까「국전」에 출품만했지, 그것을 위해 서울의 누구도 만나지는 않는다는「주의」였다. 그나마의 주의도 작년엔 무너지고 말았다.
일년내내『심혈을 기울여』작품 한점을 빚어서 열차화물편에 부쳤더니, 서울역 에서의 그 작품『산울림』은 산산조각이난 파편이 아니가. 이상남씨는 역두에서 통곡을 했다. 옥돌을 다루듯이 광복으로 싸고 또싸고, 가마니로 묶고 또 묶은 그작품이 상경길에서 한낱 쓰레기가 되어버린「대접」은 가슴이 아팠다.『차라리 내 향리에서나 빛을 내자』그들은 급년엔 모두 이렇게 마음먹었다는 것이다.
사사도 없이 시골에서 스스로 익힌 서필들은 순박한채로 생활을 그리며 때로는 그 환희에, 때로는 그 비탄에 젖어 있다. 그래도 다방에서 동인전이 열렸을때 그림이 8점이나 팔렸다. 점당5백원씩 셈이 쳐졌다. 그럴수 없이 뜻밖이고 또 큰기쁨 이었다. 전시회가 끝나는 날도 한「특사」를 뽑아 대구로 보냈다. 재료구입차.「경사」로운 기억들이다. 그러나 다른 부문과는 달리 이들은 유난히「폐새감」에 잠겨있다.
외지의 작품들과는 도무지 접할 기회가 없다. 서울의 작품전을 보러가려면 적어도 6천원은 든다.「마띠엘」도 좋은걸 사서 쓸순없다. 진흙을 기름에 이겨 쓰는 방법들을 그들은 궁여지책으로 생각한다.『아닙니더. 우리대로 특생있는 담을 쌓을수 있지 않겠읍니꺼?』향토색 그림으로 새로운 경지를 찾겠다는 그들 동인의 용기다. 아직은 화실도 없어 겨울엔 잠을 자고, 더운 철에나 야외로「캔버스」를 들고 나간다.
「청담」미술동인 ▲이상남(거창상고교사) ▲노재진(미술연구소) ▲박춘수(거창중고교) ▲임영우(거창군청 근무) ▲이인태(국교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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