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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인 공부모임 멤버 두각…수첩 속 인재도 ‘다크호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박근혜 정부의 조직개편안을 발표한 15일 이후 정치권에선 이런 이야기가 돌았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이미 국무총리 후보자와 각 부처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구상을 마쳤다더라. 조직 개편안도 그런 그림을 염두에 두고 발표했다더라.”

이와 함께 정·관계에선 조직의 수장이 누가 될지를 놓고 하마평이 쏟아졌다. 최근 5일간 각계에서 거론된 인물들을 분석해 본 결과 17개 부처 장관 물망에 오른 이는 100여 명에 달했다. ‘공룡 부처’로 떠오른 미래창조과 학부는 거론되는 인사만 10명이 넘는다.

이 중 실제 박 당선인의 마음속에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본지가 접촉한 당선인 비서실 이정현 정무팀장을 비롯해 박근혜계 인사들은 하나같이 “당선인만 안다”고 했다. ‘밀봉인사’란 말이 나올 정도로 극소수 실무진만 검증작업을 하고 박 당선인 본인이 최종 결정을 내리는 만큼 주변에선 어떤 관측도 내놓기 어렵단 얘기다. 이에 본지는 박 당선인이 그동안 보여 준 용인술을 바탕으로 후보군을 살펴봤다. 박 당선인은 인수위 인선과 과거 당 대표·비상대책위원장 시절 요직 인선 때 일정한 원칙을 보여 줬다. ‘인사 기준’을 묻는 질문에 박 당선인은 2007년 5월 16일 중앙SUNDAY 창간 기념 인터뷰에서 이같이 답했다.

“그 직책을 가장 잘할 수 있는 분, 그거를 위주로 해서 제가 인사를 했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그런 성품, 아무리 똑똑하고, 세상에 머리가 잘 돌아가고 뭐 학위도 많이 받고 하여튼 그런 것에 있어 실력이 있다 하더라도, 이해관계에 따라 쉽게 마음이 변한다면 그건 아무 소용이 없잖아요. 같이 일을 하려면, 우선 서로 믿을 수 있어야 되니까, 그런 것도 중요하겠죠.”

박 당선인은 이후에도 기자들이 인사 기준을 물을 때마다 같은 취지의 말을 했다. ▶그직책을 가장 잘할 수 있느냐 ▶신뢰할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는 거다. 원론적인 이야기 같지만 이는 ‘박근혜식 인사’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다.

능력 뛰어나면 과거 정권 인사도 배제 안 해
이는 박 당선인이 전업 정치인보단 전문가 출신을 요직에 써 온 것과 무관치 않다. 박 당선인 측근 중엔 법조인(김용준·진영·황우여·이주영·권영세)과 경제학 박사(김종인·김광두·최경환·서병수·이한구·이혜훈·유승민) 출신이 많다. 이번에 총리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거론되는 이들의 주요 직업군과도 일치한다.

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김용준 인수위원장, 조무제 전 대법관, 이강국 헌법재판소장, 김능환 전 선관위원장은 법조계에서 경륜과 신망을 쌓은 원로들이다. 새누리당 고위 관계자는 “박 당선인은 법치를 좋아하는 DNA가 있다”며 “집권 초반 총리나 장관 인사 때 법조인 출신이 중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역시 경제학 박사 출신인 진념 전 경제부총리와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과 김종인 전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경제부총리뿐 아니라 총리 물망에도 올라 있다.

일각에선 박근혜 정부의 초대 총리는 그 상징성 때문에 박 당선인이 과거와 다른 스타일의 사람을 발탁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김용준 인수위원장은 18일 기자들과 만나 능력보단 통합에 무게를 두는 취지의 말을 했다. 박 당선인의 측근 인사도 “경제부총리는 경제부처 전반에 리더십을 행사해야 돼 중량감이 있어야 하지만 총리는 국민적 신망을 고려한 명망가형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각 부처 장관 인선에선 철저하게 능력과 전문성이 중시될 전망이다. 하마평에 오르는 인사 대다수도 박 당선인에게 상당기간 조언해 온 전문가 그룹이다. 박 당선인은 2007년 대선 경선 패배 뒤 학자들과 수십 개의 모임을 꾸려 호텔 비즈니스센터 등에서 공부해 왔다. 공부모임 멤버들은 2010년 발족한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회원→일부 국회의원 진출→일부 대선 캠프·대통령직인수위 진출→부처 장관 후보 물망 등의 코스를 밟아 왔다.

우선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인 안종범 의원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인 안상훈 인수위원이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로 거론된다. 대선 당시 공약을 다듬는 국민행복추진위원회에서 일했던 곽병선 전 경인여대 총장과 김재춘 영남대 교수도 교육부 장관 후보물망에 올랐다. 박 당선인과 여성·복지정책을 공부해 온 의사 출신 안명옥 전 의원과 최성재 서울대 명예교수는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로 꼽힌다.

박 당선인은 실무 경험이 있는 관료 출신도 선호한다. 문화관광 분야에 30년간 몸담아온 관료 출신 모철민 예술의전당 사장이 인수위 분과간사에 이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거론되는 건 그 때문이다. 중소기업청장 출신 이현재 의원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후보로 점치는 사람도 있다.

박 당선인은 능력이 뛰어나면 전(前) 정권출신이거나 진영이 달라도 쓴다. 노무현 정부출신인 윤병세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대표적인 예다. 윤 전 수석은 외교부 장관 또는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장관급)으로 거론된다. 김황식 총리의 연임설도 돌고 있고,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과 김승규 전 국정원장, 김도연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최인기 전행정자치부 장관 같은 전 정부 출신들도 다시 봐야 한다는 말이 있다.

검증된 인물 선호… 핵심 측근도 후보군
박 당선인이 신뢰를 중시하는 건 본인이 직접 지켜봐 왔거나 써 본 사람을 다시 쓰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사람을 새로 쓴다면 적어도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이 추천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유민봉 성균관대 교수와 이혜진 동아대 교수가 인수위에 입성했을 때 ‘깜짝 인사’란 말이 나왔지만 사실은 박 당선인이 상당기간 지켜봐 왔거나 주변의 추천을 받은 경우였다.

이 때문인지 장관 하마평에 오른 인수위 출신도 10명이 넘는다. 박 당선인 측이 “인수위 멤버를 그대로 새 정부로 데려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해도 곧이곧대로 듣지 않는분위기다. 신뢰하는 사람을 쓰고 또 쓰는 당선인 성격상 인수위원 중 어느 정도는 정부에 들어갈 거란 관측이다.

같이 일해 온 당 핵심 측근들도 무시할 수 없다. 당선인 주변에선 “지역구 의원은 장관겸직 시 지역구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가급적 내각에 기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검증된 사람을 선호하는 당선인의 성격상 여전히 후보군이다.

서병수 새누리당 사무총장은 안전행정부 장관과 해양수산부 장관에 자꾸 거론된다. 대선 후보 비서실장을 지낸 최경환 의원도 경제부총리나 대통령 비서실장 후보로 오르내린다. 역시 비서실장 출신으로 취임준비위부위원장에 임명된 유정복 의원도 대통령 비서실장과 안전행정부 장관 후보로 꼽힌다. 검사 출신으로 대선 종합상황실장을 지낸 권영세 전 의원은 법무부 장관과 국정원장에 거론된다. 이혜훈 최고위원도 공정거래위원장 후보로 꼽힌다.

“후보 명단에서 빼주는 게 도와주는 것”
하마평에 오른 이들은 이렇게 박 당선인과의 인연이 드러난 사람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박 당선인의 숨은 인맥도 상당하다. 과거 민생 행보에서 만난 26세의 이준석 클라세스튜디오 대표를 기억해 뒀다가 비상대책위원으로 임명한 데서 보듯 박 당선인이 의외의 장소에서 만나 수첩에 적어 놓은 인재가 돌출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박 당선인은 명망가 2세들도 많이 파악하고 있다고 한다. 깜짝 총리나 장관 카드로 거론되는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산업자원부장관을 지낸 장재식 전 의원의 아들이다.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부터 내려온 인맥도 있다. 국정원장에 거론되는 민병환 전 국정원 2차장은 부친이 박정희 대통령 시절 문교부 장관을 지낸 민관식 전 의원이다. 정수장학회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에 다닌 이들의 모임 ‘상청회’(회원수 3만8000여 명)와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이름을 따 만든 서울대 기숙사인 ‘정영사’ 출신도 잠재적 인재풀이다.

미래창조과학부처럼 박 당선인이 야심 차게 추진하는 새 부처의 수장으론 삼성전자 사장 출신인 황창규 지식경제R&D전략기획단장과 이석채 KT 회장이 거론된다. 이들은 언뜻 박 당선인과 별 인연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박근혜계 의원 등 여권 인사들과 교류가 있다.

박 당선인이 검찰·경찰과 국세청 수장 인선에선 내부 조직을 존중할 거란 전망도 나온다. 경찰청장으론 김기용 청장 유임설이 나오고, 검찰총장으로 유력시됐던 차동민 전 서울고검장은 본인이 거절의 뜻을 최근 밝혀 전남 순천 출신인 소병철 대구고검장이 부상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박 당선인이 언론에 거론되는 사람을 피한다는 건 박근혜계 내부에선 정설로 통한다. 언론 플레이를 싫어한다는 거다. 모 부처 수장 후보로 거론되는 한 박근혜계 인사는 “언론에 나오는 순간 ‘아웃(out)’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력한 후보조차 언론의 하마평을 꺼린다.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한 인사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박 당선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도 없는데 언론에만 자꾸 거론돼 난처하다”며 “가급적 쓰지 말아 달라”고 했다. 과거 하마평에 오르는 것 자체를 영광스럽게 여기던 분위기가 180도 달라진 것이다. “명단에서 빼주는게 도와주는 것”이란 말이 나온다.

그럼에도 일각에선 하마평도 무시할 수 없다고 본다. 박근혜계 3선 의원은 “당선인의 인재풀에도 한계가 있는 만큼 언론이 크게 틀리진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당선인은 17일 한 인사가 “언론에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은 하나도 발탁되지 않는 거냐”고 물었을 때 크게 웃었다고 한다. 그 웃음의 의미는 결국 이르면 다음 주에 있을 총리 후보자 발표 이후에야 밝혀질 전망이다.

백일현 기자 keysm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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