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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과 음향 시설이 ‘예술’ 대접받듯 관람할 수 있는 곳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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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호 14면

1 아트나인은 92석 규모의 0관과 58석 규모의 9관(사진)으로 돼 있다. 상영관엔 여느 극장의 2배에 해당하는 스피커 23개가 설치돼 풍성한 음향을 구현한다.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

건물 바깥에서 봤을 땐 번지수를 잘못 찾은 건가 싶었다. 서울 사당동 이수 전철역 앞에 있는 골든시네마타워. 샛노랗게 칠해진 외벽에서 풍기는 인상이 기대와 많이 달라 낯설었다. 하지만 메가박스가 있는 7층을 지나 12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그런 생각은 눈 녹듯 사라졌다. 전혀 다른 공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원목 마루와 가구 등으로 쾌적한 느낌을 주는 식당 겸 카페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사람을 자연스럽게 맞아들인다. 상영관으로 통하는 복도엔 그림이 빼곡히 걸려 있다. 통유리 문을 통해 보이는 야외 상영장 저 너머론 아직 눈이 덜 녹은 관악산이 보인다. 매표소엔 사람이 북적대고 매점에선 팝콘을 튀기느라 시끄럽고 분주한 멀티플렉스 로비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강남권 유일의 예술영화관 ‘아트나인’

2 멀리 관악산이 보이는 야외상영장. 원목으로 앉을 자리가 마련돼 있어 담소를 나누기 좋다. 3 야외상영장 한쪽에 마련된 쉼터. 여기 앉으면 답답한 고층빌딩 숲 대신 탁 트인 하늘과 산이 보인다. 4 ‘소리가 다른 영화관’을 지향하는 아트나인의 자랑거리는음향시스템이다. 소리를 책임지는 파워앰프와 디지털 멀티채널 사운드 프로세서.

최근 문을 연 강남 유일의 예술영화관 아트나인(ART NINE)을 14일 찾았다. 개관한 지 며칠이 안 됐는데도 입소문이 퍼진 모양인지 사람이 제법 많다. 영화를 보고 나와 브런치를 먹거나 다음 영화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레스토랑 잇나인(EAT NINE)은 자체 로스팅하는 원두로 만드는 핸드드립 커피와 파스타 등을 주메뉴로 하는 식당이면서 동시에 로비 구실을 한다. 음식이나 음료를 시키지 않더라도, 심지어 영화를 보러 온 게 아니라도 잡지를 뒤적이거나 무료 와이파이를 이용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아트나인의 가장 큰 장점이다. 물은 무료로 제공된다.

야외 상영장 너머엔 눈 덮인 관악산
이곳은 “예술영화 관객은 멀티플렉스 관객과는 원하는 게 다르다”는 운영자인 정상진(44) 엣나인필름 대표의 생각에서 탄생했다. “예술영화 주 관객층인 40~50대 여성들은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선호한다. 일회성 영화 관람이 아닌 지속 가능한 문화 체험을 원한다. 지금의 멀티플렉스로는 그런 감흥을 얻을 수 없다.” 하긴 광화문 씨네큐브가 높은 객석점유율을 올린 데는 식당과 카페 등이 갖춰진 호젓한 분위기 덕을 많이 본 게 사실이다.

클래식 콘서트처럼 영화도 ‘대접받으며’ 관람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왜 영화를 보고 나면 좁은 통로로 쫓기듯 퇴장해야 하는가, 왜 팝콘 냄새가 진동하는 극장에서 영화를 봐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항상 있었다. 극장도 예술의전당처럼 관람 문화를 갖춘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빵 냄새 솔솔 풍기는 아트나인은 그래서 복합문화공간을 표방한다. 전시공간은 물론 야외 무대를 젊은 예술인들에게 개방한 이유도 그래서다. 아트나인은 출연료를, 예술가들은 대관료를 지불하지 않고도 관객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윈-윈 전략인 셈이다. 현재 로비와 상영관 복도를 이용해 화가 이승오씨의 개인전 ‘쇠, 돌, 나무, 그리고 종이’가 열리고 있는데, 이씨는 전시가 시작되자마자 작품이 팔리는 호응을 얻기도 했다.

기울어진 스크린과 EV사 명품 앰프
여기까지가 전채요리라면 92석과 58석 규모의 상영관 2곳은 메인 디시다. 아트나인이 자랑거리로 내세우는 건 음향과 영사 시스템. 정 대표가 운영하는 메가박스 이수와 파주 메가박스 이수는 우수한 음향 시스템으로 유명한 곳이다. 2009년엔 전설의 록밴드 퀸의 공연 실황을 담은 ‘퀸 락 몬트리올’을 상영해 콘서트장 못지않은 열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전용관인 영화의 전당 음향설비 자문에도 참여한 정 대표의 “소리가 다른 영화관을 만들겠다”는 고집은 아트나인에서도 여전하다. 세계적 록그룹 롤링스톤스가 무대에 설 때마다 애용한다는 EV(일렉트로 보이스)의 P(Precision)시리즈 파워 앰프를 바탕으로 JBL의 하이엔드 스피커로 꼽히는 ARRAY 1400과 880, 800 등을 배치했다. 상영관 1곳에 설치된 스피커 수는 23개. 일반 극장의 2배에 해당한다.

스크린을 비스듬히 기울여 영사기 렌즈와 스크린 상단부, 스크린 하단부 사이의 거리도 동일하게 맞췄다. 화질을 좀 더 개선하기 위해서다. 스크린을 기울인 만큼 좌석을 더 놓을 수 있는 공간을 포기해야 해서 일반 극장들은 하지 않는 일이다. 명암 비율이 100만 대 1인 SONY VW1000es도 보조 영사기로 쓴다. 비율이 높을수록 영상은 섬세하게 표현된다. 개관에 들어간 비용 중 4분의 1가량을 사운드 프로세서와 영상 프로세서 등 소리와 영상 품질 개선에 쏟아부었다고 하니, 이쯤 되면 의문이 생긴다. 과연 이 정도 비용을 들일 만큼 다른 극장과의 차이를 알아차리는 관객이 있을까.

정 대표의 대답은 명쾌하다. “물론이다. 좋은 소리를 알아보는 관객이 벌써 여러 분 계시다. 굳이 집에 돈 들여 홈시어터 만들 필요 없이 이곳에 와서 영화를 즐기셨으면 한다.”
아트나인 입장료는 다른 극장보다 1000원 비싸다. 평일 9000원, 주말 1만원이다. “이 정도 환경이면 기꺼이 돈을 더 내겠다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다. 아트나인에 가면 영화도 보지만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입소문이 퍼졌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강남권에서 예술영화를 보려면 압구정 CGV 정도가 답이었다. 그나마 영화 선정이 제한적이어서 예술영화 관객들은 강을 건너 광화문 씨네큐브나 이화여대 안에 있는 아트하우스모모에 갔다. 연간 150편 정도 상영하는 아트나인은 작품 선정에서나 환경에서나 충분히 보완재가 될 만하다.
예술영화 시장 규모가 덩달아 커질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대기업 멀티플렉스가 하지 못하는 문화 실험이 지금 서울 사당동 아트나인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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