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0은 요즘…] 아버지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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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2002년에는 세번의 충격이 있었지요. 월드컵 붉은 물결, 도심을 밝힌 촛불시위, 역전의 대선 드라마. 네티즌이라 하든 신세대라 하든 그 중심은 젊은이들이었고, 아버지는 감탄반 우려반으로 바라보셨어요.

정확히는 당혹이었을 겁니다. '요즘 젊은 애들 이해할 수 없다'는 심정. 그런 심정이야 이집트 상형문자로도 쓰여 있다니, 동서고금 보편적이겠지요. 그런데 대선 후 당혹감이 허탈감으로 변했습니다.

이제 이 세상의 흐름을 이해할 수도 참여할 수도 없이, 뒤안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느낌 말입니다. 신년모임에서 50대 선배님이 "우리 세대는 패닉 상태"라고 하자 그 자리의 '어른들'은 모두 공감하시더라고요. 저는 느꼈습니다. 그래, 다르다는 게 드러났던 것이구나, 그걸 허탈해 하고 계시구나.

아버지 무릎 아래 자란 제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아버지의 가치 기준은 '안정'이지요. 안정된 직장, 안정된 가정, 안정된 사회. 어려서 전쟁을 겪었고 궁핍 위협과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서, 위태위태하게 살아오셨습니다.

삶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혼신의 힘을 다해야 했던 세대, 그렇게 이 정도를 성취했다는 자부심. 그 자부심이 거부되니 허망하시겠지요.

자식들에게 아버지는 "너무 개인주의적인 것 아니냐"고 말씀하십니다. 그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가족과 직장을 위해, 그리고 사회발전이라는 명분으로 하기 싫은 일들도 해야 했던 아버지시니까요.

그러나 아버지의 삶 덕분으로 저희는 다른 경험을 하고 자랐습니다. 저는 행복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밀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조직과 위계에 소속되기보다 방에 틀어박혀 몇 시간이고 인터넷에 몰두할 때 행복합니다.

그리고 2002년 세번의 충격은, 그렇게 행복을 느끼던 수많은 개인의 밀실들이 서로 공감하고 연결되면서 일어났습니다. 아버지 눈으로는 매우 불안정한 폭풍처럼 보이겠습니다만, 그것이 저희 세대의 행복의 조건입니다.

어떤 것이 더 옳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다만, 사회안정이라는 명분 뒤에 권위적이고 배타적인 체제의 그림자가 있었음은 잘 아실 겁니다.

그를 거부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밀실의 네트워크가 어떤 광장으로 형성될지, 아직 모르는 일이지요. 그러나 모든 세대는 전 세대의 어깨를 딛고 서는 법입니다.

아버지는 신문에 난 노화의 증거 "젊은이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는 항목을 보면서 공감하셨지요. 그러나 평균수명이 매우 늘어났습니다. 이해하려고 노력해 주세요. 5060 세대는 앞으로 수십년 동안 저희와 함께 사셔야 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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