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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공동체를 찾아서] 2. 포콜라레 한국본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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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는 우리가 이웃에 베풀 수 있는 사랑의 최대치가 담겨 있다. 무척 어렵지만 그것을 실천하려 노력하면 이웃은 또 다른 내가 된다. 이웃이 울면 나도 울고, 이웃이 웃으면 나도 웃게 된다.

서울 중구 신당동에 자리잡은 포콜라레(벽난로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 한국본부에는 천주교 여성 평신도 10명이 복음(福音)안에서 우리 모두 하나되는 삶을 추구하고 있다. 이곳의 공용어는 이탈리아어다.

포콜라레 공동체는 1943년 이탈리아 북부 도시 트렌토에서 전쟁의 참혹함에 진저리를 치던 키아라 루빅(83)이라는 여대생이 영원한 무엇인가를 갈구하면서 시작됐다.

좁은 방공호 안에 모인 몇몇 처녀들은 복음에서 삶의 희망을 건졌다. 그들에겐 특히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에 한 말씀 '아버지, 저 모든 사람이 하나되게 해 주십시오'라는 대목이 절실했다.

'저 모든 사람'은 당연히 인류다. 모든 인류의 안에서 일치를 이루겠다는 희망에 지금도 1백84개국에서 6천여명이 봉헌의 삶을 살고 있다. 국내에는 69년에 들어왔으며 현재 서울.대구 등에 남녀 공동체가 일곱 곳 있다. 이들도 정결.청빈.순명의 서원을 한다.

이 정도의 삶이라면 차라리 사회와 차단된 수도원이 더 나을 듯하다.

"부르심은 하늘에서 오는 겁니다. 저의 선택이 아니죠. 사회 속으로 들어가서 혁신시킬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지 않습니까. 나를 보호해 주는 수도복과 수도원에 갇히지 않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전문직을 그대로 지키면서, 예컨대 화가라면 창작을 계속하면서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화폭에 담는 거죠. 세상을 수도원 삼아 살아갈 수 있어요."(회원 박정순씨)

포콜라레 공동체의 식구들은 노동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번역.출판 혹은 회사 근무를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스케줄은 저마다 다 달라도 묵상과 기도를 게을리 하는 일은 없다.

"예수 그리스도와 깊은 일치를 이루고, 그렇게 이룬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묵상을 자주 합니다. 삶을 사는데 흐트러진 부분은 없는가, 나보다 형제들을 더 사랑하는가를 놓고 반성하기도 합니다."(회원 조반나)

나이와 국적, 살아온 배경이 서로 다른 10명이 한 지붕 아래에서 일치를 이루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상대방에게서 다른 점이 보이면 부딪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 사랑하고, 그 사랑을 늘 깨어 있도록 가꾸기 위해 매일 아침 서로를 새롭게 보려고 노력합니다. 부정적인 것은 다 털어내고 아침이면 늘 새로운 눈으로 시작하는 겁니다. 늘 새로 만나는 마음으로, 예수를 만나는 마음 가짐으로, 그렇게 살다보면 먼저 용서하는 용기가 생겨납니다."(회원 클라리타)

박정순씨가 다시 거들었다. "다른 사람에겐 내가 갖지 못한 아름다움이 있어요. 그런 식으로 관용을 베풀다 보면 영혼이 넓어지고, 상대방의 모든 것이 내 안으로 들어옵니다. 나이.문화.국적은 달라도 개성을 존중하면서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참다운 세계인이 되는 것, 그것이 이곳의 정신입니다."

포콜라레의 정신은 보편성이 강하다. 그래서 일치의 정신을 생활화하려는 국내의 일반 회원 1만5천여명 중에는 개신교와 불교 신자도 상당수 있다. 전북의 어느 교회는 목사를 비롯한 신도들이 포콜라레의 영성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포콜라레 회원들은 이탈리아 피렌체 근처의 양성소에서 2~3년 교육을 받으면서 사랑을 바탕으로 나 자신을 바칠 각오가 돼 있는지를 점검한다. 이 과정이 끝나면 이들은 포콜라레 세계본부의 지시에 따라 각국을 돌며 공동체 생활을 하며 복음을 전한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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